[문화산책] 음악의 힘

  • 이주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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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14  |  수정 2021-09-14 07:41  |  발행일 2021-09-14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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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변호사)

눈이 와 보도블록에 얼음이 꽁꽁 얼고 길 가던 사람들이 얼음에 픽픽 미끄러지는 서울의 모습을 태어나 처음 본 건 20년 동안 살던 대구를 떠나 대학교 기숙사로 짐을 옮기던 때였다. 수많은 사람이 세련된 서울말을 쓰는 서울에서, 사투리밖에 쓸 줄 몰라 빵을 사는 것도 주저하던 내가 그 외로움을 견딘 건 음악 덕분이었다. 팝송이든 가요든 내 취향의 음악이 시작되면, 낯설고 복잡하고 바쁜 사람들 투성이라 인정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서울 길 한복판을 걸을 때도 이내 안전하고 편안한 나만의 공간이 나에게 펼쳐졌다.

20년도 더 넘은 기억이지만 소록도에서 마주친 한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는 나에게 하모니카 연주로 각인되어 있다. 고교 2학년 때 한센병 환자들의 숙소를 청소하는 봉사활동을 하다 마주친 부부였다. 할머니는 시력을 잃으셨지만 신체는 건강하셨고, 할아버지는 눈은 잘 보이시지만 한센병으로 다리를 잃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다. 밥을 지으려 냄비에 쌀을 부은 할머니가 나에게 물을 부으라 하셨고, 시키는 대로 물을 붓다 말고 "이 정도면 될까요"하고 질문을 던진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순간 할머니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깜박하고 내가 얼마나 물을 부었는지 확인해달라는 질문을 해버린 나는, 냄비를 아래 위로 들었다 놓았다 하며 냄비와 물이 합쳐진 무게로 물의 양을 가늠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눈이 안 보여도 물의 양을 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에 너무 부끄러워졌다. 할아버지의 하모니카 연주는 피아노로 치면 왼손과 오른손을 한번에 치는 것처럼 수준급이셨다. '듬뿍듬뿍 듬뿍새 논에서 울고~' 그 하모니카 소리가 유독 구슬프게 들린 것도 나의 편협한 생각 때문이었을까. 다른 분들의 숙소를 청소해야 하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 한참을 할아버지의 하모니카 연주를 들으며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쩍 가까워졌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시생 신분으로 팍팍한 신림동 생활을 하던 나를 달랜 것도 음악이었다. 내가 짠 스케줄이 마치 거미줄처럼 감싸고, 즐겁고 슬프고 힘든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지던 고시생은 '언니네 이발관'의 '산들산들' 노래를 반복해 듣는 사치로 그 시간을 버텼다. '나는 나의 길을 가. 소나기 두렵지 않아. 구름 위를 날아 어디든지 가. 외로워도 웃음 지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싶네. 그게 나의 길.' 그렇게 음악은 치유로, 소통으로, 감동으로,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이주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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