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음식과 우정

  • 김동준 영남이공대 호텔·와인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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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27 07:46  |  수정 2021-09-27 08:17  |  발행일 2021-09-27 제21면

김동준
김동준〈영남이공대 호텔&와인전공 교수〉

얼마 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랫동안 보지 못해 나를 만나러 대구까지 온다는 것이었다. 너무 반가웠고 오랜만에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누군가의 방문은 항상 기쁘고, 무엇을 대접할지 기분 좋은 생각이 많아진다. 대구의 특색을 담은 음식을 맛보기로 마음먹고 '뭉티기'로 결정했다.

친구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저녁 시간이 되어 예약한 식당에서 뭉티기를 주문했다. 다행히 친구도 반색하며 생고기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 역시 예전 포장마차의 추억을 꺼내며 기억도 가물가물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했다. 우정은 추억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어려운 시기에 서로 격려하며 함께했던 시간이 귀한 것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대구의 특색 있는 음식 중 뭉티기를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다. 2013년 대구에 처음 왔을 때 맛보았던 그 맛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뭉티기는 대구가 원조로 뭉텅뭉텅 썰어낸 한우 생고기다.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소 뒷다리 안쪽 허벅지 부위 일종인 사태살을 쓴다. 포인트는 참기름, 마늘, 고춧가루 등을 섞은 양념에 푹 담가 먹는 것이다. 싱싱하다는 것을 뛰어넘어 따뜻하고 쫀득하며 차진 맛이 압권이다. 친구에게 바로 이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나는 요리사가 된 것처럼 '미식(美食)의 도시 대구'를 자랑했다. '대구 10味' 중에서 나머지 9가지를 모두 알려줬다. 얼큰하고 개운한 따로국밥, 저지방 고단백의 고소한 막창구이, 멸치 국물의 시원한 누른 국수, 부드러운 콩나물과 매콤한 복어불고기, 매콤달콤한 볶음국수 야끼우동, 맵싸하고 화끈한 동인동 찜갈비, 싱싱한 채소와 해물의 무침회, 식물성 만두소의 담백한 납작만두, 얼큰한 국물과 수제비의 논메기 매운탕이 그것이다. 이쯤 되면 나는 대구 공인 음식문화해설사가 아닌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예전의 순수한 감정은 점점 옅어지는 것 같다. 우정이라는 것도 추억에만 머무르고 에너지가 약해지는 기분이다. 친구의 방문을 계기로 뭉티기는 다시 우정을 일깨워준 매개 음식이 됐다. 대수롭지 않은 음식이지만 친구를 위해 준비하는 정성이 있었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친구를 보내며 근대골목 단팥빵 한 봉지를 손에 건넸다. 그리고 말했다. "친구야, 다음엔 내가 먼저 연락할게. 고마워."
김동준〈영남이공대 호텔&와인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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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준 영남이공대 호텔·와인전공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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