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신의 방울소리

  • 김동준영남이공대 호텔·와인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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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04 07:51  |  수정 2021-10-04 09:05  |  발행일 2021-10-04 제20면

김동준
김동준 (영남이공대 호텔&와인전공 교수)

와인을 접한 지 꽤 오래 되었다. 호텔에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점차 관심이 커져서 이제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와인의 레이블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좋은 와인을 보면서 멋진 분들과 함께 마실 생각을 하면 즐거움에 푹 빠진다. 와인을 마실 장소와 맛있는 음식도 떠올려 본다. 그런데 요즘 나에게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나타났다. 바로 소리다. 와인의 소리!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가 있다. 어느 날 진상 손님이 와인에 대해 불평을 하며 소란을 피우는데, 견습 소믈리에가 쩔쩔매자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와인을 멋지게 디캔팅해 제대로 풍미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잠자고 있는 와인을 깨우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한다. 우리 인생에서 결실을 위해 인내하는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지하 저장고 까브에서 오랜 시간 와인은 무엇을 할까? 누군가 자신을 오픈할 때 환호하는 그 소리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맛에 관심을 두지만 와인은 소리를 준비한다.

얼마 전 멋진 곳에서 평소 존경하는 분들과 식사를 했다. 아베리코 특수부위, 송이버섯, 참기름이 준비되었고, 나는 1983년산 에세죠(Echezeaux) 올드 빈티지의 최고 와인을 가져갔다. 역시 소중한 사람과는 소중한 와인이 중요하다는 나의 철학은 틀림이 없다. 다양한 사람과 소통하는 문화의 매개체가 바로 와인이다. 나는 이번에도 소리를 찾아 즐겼다. 와인을 준비할 때 설레는 콩닥콩닥 소리, 코르크 오픈하는 소리, 디캔터에 따르는 소리, 와인 잔을 돌리는 소리, 입에서 호로록하는 소리, 목 넘기는 소리 등 참 멋진 소리의 향연이다.

와인만의 소리에서 나의 즐거움은 멈추지 않는다. 맛있게 익어가는 고기 굽는 소리, 송이버섯과 함께 먹는 음식에 대한 탄성의 소리도 또한 멋지다. 그러나 무엇보다 최고의 소리는 함께 모인 '사람의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와인의 소리가 점차 우리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익어가는 것이다. 결국 와인의 소리는 인생의 소리였다. 와인의 취기가 뇌의 깊은 곳까지 소리의 꽃을 피워간다.

와인의 맛에서 소리의 발견은 나에겐 실로 큰 변화다. 와인에서 새로운 '신의 방울소리'를 찾은 것이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샴페인의 힘찬 기포 소리와 베토벤의 '운명'을 꼭 들어야겠다고! '신의 방울소리'를 들으며 추억을 함께할 주인공들이 기대된다.
김동준 (영남이공대 호텔&와인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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