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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현〈변호사〉 |
몇 년 전 해인사 납골당을 찾았다. 나눔의집에 다니던 친구들과 함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찾아뵙기 위해서였다. 할머니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셨다. 나눔의집에 있던 할머니의 작은 방은 온통 성인 키 높이만큼 물건들이 쌓여서 한 명이 겨우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만 남아 있었고, 겨우 다리를 웅크리고 누울 수 있는 공간에 이불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할머니는 자신과 가깝다고 생각하는 몇 명을 제외하고는 방 입구 근처에도 못 오게 하셨는데, 얼떨결에 내가 할머니의 보물창고를 목격하는 호사를 누렸다. 할머니의 세월은 그렇게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한 채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날은 할머니 방의 물건들을 모두 꺼내 정리하는 날이었다. 할머니가 어떻게 그동안 모은 물건들을 정리하겠다는 마음을 낸 것인지 아직도 궁금하다. 그날 나눔의집 마당에는 할머니 방에 쌓여 있던 수많은 물건들이 모두 펼쳐졌는데, 넓은 마당을 가득 채우고도 넘치는 양이었다. 나눔의집을 방문한 한 분이 "오늘 벼룩시장을 하는 날인가요"라고 물을 정도였다.
할머니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내가 다니던 대학교 앞까지 와서 옷과 신발을 쇼핑할 만큼 멋쟁이였다. 화장도 잘하고 액세서리도 좋아했는데, 온통 태그도 떼지 않은 물건들이 즐비했다. 노래도 가수처럼 수준급이었고 그림도 잘 그리셨는데, 오래된 음악테이프들과 CD, 미술도구들도 한가득이었다. 할머니는 많은 그림을 그리셨다. 나눔의집 마당의 크고 작은 돌들에도 그림을 그렸는데, 비바람에 닳아 희미해진 다정한 사람들의 그림, 예쁜 꽃그림들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허전하고 외로운 할머니의 마음이 그렇게 오랜 시간 쌓인 온갖 종류의 물건들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을까. 당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이었을까.
해인사 납골당에서 친구들과 한참 할머니 이야기를 나눴다. 밥이 맛없다며 불평하시던 모습, 어릴 적 맛있게 드셨던 음식 자랑을 늘어놓던 모습, 나눔의집 수련관 노래방 마이크를 한 번 잡으면 한참을 놓지 않고 노래 부르던 모습까지, 그리운 할머니를 얘기하며 행복하시기를 기도했다. 납골당에 주차된 차에 올라 타려는데, 차문에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우리 모두 얼음이 되어 한참을 그 나비만 쳐다보았다. 차에 올라탈 그 타이밍에, 많은 차 중에 우리 차에, 그 나비가 찾아와 한동안 앉아 있어준 사실이 반갑고 고마웠다.
할머니도 자유롭게 실컷 노래 부르며 훨훨 날아다니고 계실 거란 생각에 나도 함께 행복해졌다.
이주현〈변호사〉
이주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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