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스토리] 100걸음 걸으면 동네 끝…국내 최소 법정동 '대구 중구 상덕동'

  • 윤관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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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4 07:56   |  수정 2021-10-1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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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0.003㎢, 세대수 5세대, 주민 수 8명. 대한민국 법정동 중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대구시 중구 상덕동'을 나타내는 숫자들이다. 동명(洞名)은 마을에 있던 상덕사(尙德寺)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상덕동은 사찰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현대적이면서도 옛날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과도기적 분위기를 고스란히 지닌 채 교동 전자골목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동(洞)은 어떤 이야기를 그 작은 터에 간직하고 있을까? 교동 전자골목의 표지를 지나 동네를 관통하는 길을 걸으며 옛이야기를 따라가 봤다.
 
 ◆15걸음, 대동전자
 상덕동이 시작되는 대동전자 건물(대구 중구 교동2길 8) 북측에서 열다섯 걸음을 가면 '대동전자'라는 파란 간판의 상가가 자리 잡고 있다. 60년 넘게 간판을 이어가고 있는 이 상가는 교동을 대표하는 최고(最古) 상가다. 동성로에서 시작해 교동으로 터를 옮겨 4대째 대동전자의 명맥을 잇고 있는 공정갑(59) 사장은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한 교동에서 잔뼈가 굵은 기술자다. 공 사장은 많은 부품이 자리 잡은 벽을 둘러보며 "예전에는 손님들이 고장 난 TV를 갖고 오면 찾을 것도 없이 증상에 맞는 부품들을 척척 골라내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기업 AS센터가 생기면서 지금은 가전제품 고장으로 매장을 찾는 손님들이 없어 예전처럼 재빠르진 못할 것이라 한다. 현재는 음향제품계통으로 전향해 대동전자의 명맥을 잇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매장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닳은 이름표가 붙은 부품 상자들은 대동전자가 어떤 곳이었는지 알려준다.
 
◆40걸음, 국제백화점
조금 더 걸어가면 세월의 흔적을 덕지덕지 붙인 4층짜리 연립상가가 있다. 그저 교동에 흔한 옛 상가라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상가 1층 한 편에 자리 잡은 '평화측정기' 류수현(80) 사장의 이야기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상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1960년대 중반쯤 상덕동 반장을 맡았다는 류 사장은 그 당시 열다섯 가구 남짓한 동네 주민들에게 귀했던 고춧가루를 나눠준 이야기를 하며 상덕동의 옛이야기를 꺼냈다. 교동시장이 양키시장이라는 이름으로 한창 번창했던 시절에는 상가 한 편에 살림을 차리고 살아가는 사람이 적잖이 있었다고 한다. 부산의 국제시장이 수입품으로 한창 명성을 떨칠 때 대구에도 국제시장 못잖은 수입품 상가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양키시장 상인들이 구멍가게들이 촘촘히 들어선 이 연립상가를 '국제백화점'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정식명칭은 아니었고, 요즘 백화점처럼 으리으리한 외관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아는 사람들은 아는 밀수품이나 희귀한 상품들을 찾는 손님들이 드나드는 양키시장의 꽃이었다고 한다. 현재 두 번의 화재를 겪고 낡을 대로 낡은 상가의 모습에서 '국제백화점'이라는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만, 그 명칭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화려했던 교동의 정수가 담긴 곳일지도 모르겠다.
 
◆55걸음, 경신전자
이제 동네의 중간이다. '경신전자'는 대동전자를 잇는 교동 전자골목 대표 상가다. 50년 동안 '경신전자'를 운영해온 김선일(76) 사장은 대동전자의 직원으로 시작해 베트남전 참전 후 경신전자를 차리게 됐다고 한다. 여관 골목이었던 지금의 거리가 대동전자가 들어서며 자연스럽게 교동을 대표하는 전자골목으로 변신했다고 한다. 옛날에는 상덕동으로 와야 할 물건이 삼덕동으로 가 성업 중인 가게들의 골칫거리였지만, TV 퀴즈쇼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동네로 문제가 많이 나와 사람들이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 했다. 50년간 지켜본 동네를 추억하며 꺼낸 옛이야기 속에서 작은 동네의 설움보다는 교동을 대표했던 이 작은 동(洞)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1980년대 번창했던 시절 손님들로 북적였을 가게는 동네의 터줏대감인 김 사장 지인들의 사랑방 노릇을 하는 듯 보였지만, 여전히 전자제품으로 가득한 가게는 앞으로의 세월도 거뜬히 그 역할을 해낼 듯 보인다.
 
100걸음을 걸으면 동네의 끝이다. 마을을 관통하는 100걸음을 걷고 뒤를 돌아보면 지나치게 짧지만, 여느 큰 동네 못지않게 풍부한 이야깃거리들을 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법정동, '상덕동'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글·사진=윤관식기자 yk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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