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2021 세대공감 공모전' 金賞 정화중 연채원 학생 수기

  • 정화중 연채원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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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8 07:52  |  수정 2021-10-18 07:54  |  발행일 2021-10-18 제13면
"늘 내편인 외할아버지…나도 든든한 한편 되고파"
맞벌이 부모 대신 도맡아 키워줘
공부 스트레스 풀어주는 역할까지
의사 꿈 이뤄서 꼭 효도하고 싶어

1.초등졸업식에서(210212)
연채원 학생이 초등학교 졸업식에 외할아버지와 돌아가신 외할머니 사진을 같이 들고 졸업사진을 찍고 있다. 〈연채원 학생 제공〉

'효'라는 말은 어렵고 포괄적으로만 느껴지는 단어인 것 같다.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유교 사상이 아직도 뿌리 깊게 박혀 있어 당연히 자식 된 도리를 해야 하고, '효'는 당연히 자식으로서 실천해야 하는 것이라고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당연히 나도 부모님께 효도해야 하고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내가 커서 꼭 '효'를 실천하고 싶은 분이 한 분 더 계신다. 그분은 바로 나의 외할아버지이시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어려서부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나를 도맡아 키워주다시피 하셨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는 내가 2살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 동으로 이사를 오셔서 맞벌이인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돌봐주셨다. 그런데 내가 6살이 되던 해에 외할머니께서 아프셨고, 1년을 치료와 회복을 반복하시다가 내가 7살이 되던 해 봄에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나서도 외할아버지께서는 나를 돌보시는 일을 계속해 주셨다. 유치원 하원 차에서 내린 나는 할아버지 손을 이끌고 늘 마트에 들어가 간식이며 계산대 밑에 늘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장난감들도 꼭 손에 하나씩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나를 엄마는 늘 꾸짖으시며 외할아버지께 자꾸 이런 거 사달라고 하냐며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렇게 기가 죽은 나를 외할아버지께는 조용히 부르시며 귓속말로 "채원아, 괜찮아. 할아버지는 늘 채원이 편이야. 채원이가 사고 싶으면 사도 돼!"라고 이야기해주셨다. 그런 할아버지는 나에겐 천군만마보다 더 큰 존재셨다.

내가 학교를 입학할 때쯤 엄마는 동생을 낳으시고 잠시 휴직을 하셨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는 원래 외할아버지댁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 집은 멀어졌지만, 주말마다 혼자 계신 할아버지 댁으로 놀러 가게 되었다. 우리 가족이 온다면 늘 음식을 준비해 놓으셨다. 내가 한 번 감기에 걸렸을 때, 목이 아파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아 죽을 사주셨는데 그때 새우 죽이 너무 맛이 있었다고 말씀드렸더니 주말에 외할아버지 댁을 들를 때마다 할아버지께서는 죽을 사놓으셨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땐 "아침에 엄마 바쁘니 냉장고에 넣어 놓고 아침으로 먹고 가"라고 하시며 죽을 손에 쥐여 주셨다.

이젠 죽을 너무 많이 먹어 먹고 싶지 않지만, 요리가 힘드시고 손녀의 맛있었다는 말에 가게까지 찾아가서 늘 죽을 포장해 오시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맛이 없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늘 죽을 먹고 있다. 그 죽을 사러 가시면서 나 먹일 생각에 즐거워하실 모습이 느껴져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마 엄마가 그렇게 하셨다면 '이제 죽은 질린다고 보기도 싫다'고 했을 것을 말이다.

이제는 중학생이 되고 나니 해야 할 공부도 많아지고 스트레스도 많아지는데 그럴 때면 외할아버지가 먼저 떠오른다. 집에서 엄마는 내 걱정이라며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다 보면 짜증도 나고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이럴 때 외할아버지댁은 나의 탈출구다. 외할아버지댁에 가면 늘 외할아버지께서는 웃으시며 "우리 채원이 요즘 고생 많지. 큰 방 들어가서 쉬어!"라고 말씀하신다.

부모님도 늘 혼자 계시는 외할아버지가 걱정이신가 보다. 나이도 점점 많아지고 이곳 저곳 불편하신 곳도 많아지셔서 외할아버지댁에 갈 때마다 외할아버지의 컨디션을 살피게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엄마와 통화하실 때는 불편해서 병원 어디 어디 다녀오셨다고 하시는데 정작 직접 뵐 때는 아프신 내색을 전혀 하지 않으신다. 진짜 괜찮으신가 싶다가도 수시로 찜질기를 사용하셔서 무릎과 허리를 찜질하시는 걸 보면 우리가 걱정할까 봐 일부러 내색을 안하시는 거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난 또래에 비해 덩치도 많이 작고 잔병도 잘하는 편인데 그런 날 생각하셔서 해마다 보약을 지어 먹이라고 엄마에게 돈을 주신다. 그래서인지 외할아버지 덕분에 감기도 덜하고 키도 조금씩 크는 것 같다. 본인도 몸이 불편하신데 늘 나의 건강을 위해 뭘 더해줄지 고민하시는 외할아버지께 너무 감사하다.

외할아버지의 연세가 올해 74세이신데 오는 6월16일에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 맞기로 예약을 하셨다. 그런데 외할아버지께서는 당뇨와 고혈압으로 약을 드신 지 오래되셨고, 방송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를 보시고는 많이 걱정을 하신다. 며칠 전에도 예약은 했는데 맞아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냐면서 엄마에게 전화가 오셨다. 엄마는 맞아도 된다며 괜찮다고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지만, 끊고 나서 아빠와 외할아버지께서 너무 걱정하셔서 맞으라고 하는 게 맞는지 걱정이라며 이야기를 나누시는 걸 들었다. 그리고 혼자 계시니까 예방접종 맞으시고 우리 집에 며칠 계시라고 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통화 내용을 듣고 있으니 나도 걱정이 되었다. 실은 나의 꿈은 의사이다. 솔직히 중학교에 들어와 공부를 해보니 너무 어렵고 또 해야 하는 공부의 양이 많아 의사가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긴 하지만, 로봇을 활용한 의학 시술에 대해 연구하는 의학박사가 되는 게 꿈이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니 더더욱 의사에 대한 꿈에 대해 고민하고 꼭 필요한 직업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내가 의사가 되어 외할아버지가 아프시게 되면 꼭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외할아버지가 늘 내 편이셨던 것처럼 나도 외할아버지의 든든한 편이 되어드리고 싶다.

친구도 그렇고 어른들 사이에서도 심지어 정치에서도 편 가르기를 하는데, 나에게는 영원한 내 편이 있다는 게 정말 든든하고 힘이 되는 것 같다. 오늘도 미약하지만 할아버지의 멋진 편이 되어 드리기 위해 내 일상에서도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외할아버지가 나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도록 말이다. 영원한 내 편인 외할아버지, 채원이도 영원히 외할아버지 편이에요. 제가 입학할 때, 졸업할 때처럼 저의 큰일들에 늘 함께해 주셨던 것처럼 저도 늘 외할아버지 곁에서 든든한 할아버지 편으로 있을게요. 할아버지도 지금처럼 건강하셔서 꼭 오래오래 제 편이 되어주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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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중 연채원 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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