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아프간, 프리다칼로, 외할머니

  • 이주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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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9  |  수정 2021-10-19 08:09  |  발행일 2021-10-19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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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변호사〉

저 멀리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 충격이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가리는 검정색 원피스를 입지 않은 여성이 길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머리에 총살을 당하는 영상은 너무 끔찍했다. 탈레반의 여성에게만 엄격한 복장 규제에 여성들은 SNS를 통해 반발하고 있다. 알록달록한 전통의상들에는 형형색색의 자수들이 놓아져 있고, 의상의 모양과 길이도 모두 제각각이다. 온통 새까맣고 아무런 무늬 없이 온몸을 뒤덮은 옷으로만 아프간을 떠올리던 나의 편견이 부끄러웠다. 그렇게 아프간 여성들은 탈레반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있음'을 SNS를 통해 온 세계에 보여준다.

우연히 프리다 칼로라는 멕시코 화가의 그림들을 보게 되었다. 몸통에 척추뼈가 드러난 자화상, 목이 가시덤불에 갇힌 모습, 수십 개의 화살을 맞아 피흘리는 사슴, 잔인한 그림들은 프리다 칼로의 삶을 궁금하게 만들었고, 그가 소아마비, 큰 교통사고 후 평생 받은 수십 번의 척추수술, 남편의 계속된 외도로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을지, 내가 상상 가능한 범위 밖이었다. 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손 끝에서 그림을 그려냈고, 자신이 그린 그 그림이 스스로를 위로해주며 '잘 살아있음'을 확인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도무지 와닿지 않는 일제강점기 전쟁 이야기였지만, 그 시절을 살아낸 외할머니의 이야기들로 나와 그리 멀지만은 않은 일들이었음을 짐작했다. 시뻘건 폭탄이 하늘에서 수도 없이 떨어지는 모습을 외할머니는 생생히 기억했는데, 그래서 어디로 도망갔냐는 내 물음에 "어딜 가긴, 그냥 우리 집에 있었지." 짧은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내 어리석음이 탄로났다. 어찌 하고 싶어도 어찌할 수 없었을 그 상황을 마냥 무기력했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일이 또 있을까. 다른 사람의 불행에서 내 삶의 행복을 느끼며 드는 죄책감,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부터 누리는 평화,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폭력과 희생들, 이 안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부채를 안고 사는지, 나는 얼마나 무기력한지 또는 얼마나 어찌 해보려 노력했는지, 나는 얼마나 모른 척 시치미 떼며 살고 있는지, 나는 잘 살아있는지 한참을 생각해 본다.

이주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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