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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지민〈책으로 노는 사람들 회원〉 |
1950년대 지역에서 열린 음악 공연 팸플릿을 봤다. 공연장소가 국립극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국립극장은 6·25전쟁 당시 1953년부터 57년까지 대구에 와 있었던 국립극장이다. 국립극장은 서울에만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지역에 국립극장이 있었던 사실은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생소한 일이다.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국립문화 공간이 생기고 그곳을 중심으로 콘텐츠와 예산이 집중되면서 지역은 소외되어 갔다.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문화예술 분야만 보더라도 가장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일 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적이다'라는 말은 통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지역 문화예술은 지역의 것으로 여겨질 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가 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지역이라는 말이 지역의 고유성이나 특성을 함축하고 있다고 인식되기보다 서울, 중앙과는 구분되는 어떤 장벽이 되어 버렸다.
국립예술단체·기관이 생산한 문화예술을 지역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또 지역에서 열리는 공연, 전시나 생산된 문화예술 결과물은 서울에서 공연, 전시되기도 무척 어렵다. 그래서 지역 작품의 서울 입성은 때때로 지역의 큰 뉴스가 되기도 한다.
대구문화예술 아카이브 열린수장고(대구예술발전소 3층)에 가면 근대 이후 문화예술로 아픈 상처를 달래며 지역에 문화예술을 뿌리내리기 위해 애썼던 예술인들의 노력을 자료로 만날 수 있다. 1963년 대구방송교향악단 창단을 축하하는 레너드 번스타인, 피에르 몽퇴의 전보와 파블로 카잘스의 친필 서명 편지가 있다. 또 김진균이 작곡한 가곡이 불린 1969년 제1회 서울음악제 프로그램도 있다. 예술가의 활동과 노력이 세월을 넘어 고스란히 자료로 남아있는 것이다.
서울에 소재한 국립 문화예술 5개 기관은 각자 기관의 디지털아카이브 체계를 갖추고,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K-PANN'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문화예술 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역 문화예술 자료는 이들의 자료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가치가 있고 더 큰 의미가 있다. 지역 문화예술사는 국가 예술사로서의 재조명이 필요하다. 이는 문화예술의 균형 발전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남지민 책으로 노는 사람들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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