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지옥' 연상호 감독 "지옥행 '고지' 받은 신생아, 후속 이야기 만드는데 중요한 모티브"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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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2-10  |  수정 2021-12-10 09:19  |  발행일 2021-12-10 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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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은 마치 게임 속 메타버스처럼 내가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고 관찰할 수 있는 가상세계이자 궁극적인 놀이터였다." 연상호 감독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세계관이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에서 제대로 물을 만났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지옥'은 죽음을 고지 받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지옥행 시연을 받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그 혼란을 틈타 부흥한 사이비 종교단체 새진리회, 그리고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신과 죄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 한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 그리고 과격한 폭력 묘사까지 연상호의 인장이 첫 회부터 오롯이 화면에 새겨진다. 연 감독은 현대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합리성이 무너지고 순식간에 원시 사회로 돌아가버리는 이 모든 과정을 지옥으로 봤다. 이를 통해 '인간다움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굳이 지옥의 풍경을 전시하지 않아도 혼란에 빠진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현실이 지옥이기에 지금 바로 이곳에 지옥의 사자들을 소환해 인간들의 나약함과 두려움을 들춰냈다. '지옥'은 연상호 감독의 또 다른 디스토피아의 서막이자 놀이터로서 '연니버스'의 물리적 확장을 꾀한 새로운 시작점이다.

초자연적 현상·사이비 종교단체 얽혀
혼란 빠진 이들이 만드는 현실이 지옥

'제2의 오징어 게임' 해외서 뜨거운 반응
미지 존재와 인간 '코스믹 호러 장르'
한국콘텐츠, 세계시장 벽 점점 허물어

마니아적 웹툰 시리즈, 생소해 할수도
B급 감성 지향, 천사 모습 이질적 그려
내년 하반기에 만화로 먼저 나올 계획

▶'제2의 오징어 게임'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지옥'에 대한 해외 반응이 뜨겁다. 한국 드라마가 이렇게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

"'결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방죽이나 둑 따위가 조금씩 물에 밀려 결국에는 터져 무너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작금의 국내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을 보면 그 단어가 떠오른다. 철옹성처럼 단단해 보였던 세계 시장의 벽을 오래전부터 쌓아올린 한국 콘텐츠의 신뢰감이 조금씩 틈새를 만들기 시작했고 결국 무너뜨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의 수혜를 입은 것도 사실이다. 일단 배급 방식이 글로벌하기 때문에 확장성이 크고 할 수 있는 영역이 넓다. 또 소재에 대한 제약이 없어 자유로운 기획을 할 수 있고 실시간 반응이 가능하다는 점도 크리에이터 입장에서 굉장한 메리트다. 세계인에게 통용되는 한국 콘텐츠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시기적으로 구조적으로 여러 상황들이 잘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지옥'은 삶과 죽음이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무겁지 않게 건드리며 장르적 재미까지 아우른다. 그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 고민했던 지점이 있다면.

"이 작품을 처음 구상할 때 보편적인 대중을 만족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B급 감성이 느껴지는 마니아적 웹툰 원작을 시리즈로 매체 전환한 것이기에 어떻게 보면 낯설고 생소해보이는 세계관으로 느껴질 수 있다. 때문에 테크닉적으로 일부러 밸런스를 유지하자는 생각보다는 단순히 내가 대학시절 재밌게 봤던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 같은 만화들을 떠올리며 그때 받았던 느낌과 감동, 재미와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비슷하게 전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만화가 가지고 있는 눅눅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여러 비주얼적인 측면도 구현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이야기는 인간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전작 '사이비' '돼지의 왕' 등에서 다뤘던 사이비 종교와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하고 비합리적 행태의 비판을 좀 더 확장시킨 듯한데.

"'지옥'은 코스믹 호러에 가깝다. 코스믹 호러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우주적 공포를 마주한 인간의 모습을 다룬 장르인데 거대한 미지의 존재와 인간과의 대비를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강함을 표현한다. 나는 여기에 종교적 색채를 가미했다. 보다 심도있게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좋은 장치라고 생각해서다. 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려면 미스터리한 건 미스터리한 채로 놔두고 각각의 상황에 놓인 인간들의 모습에 천착해 현실성과 디테일을 부여해야 한다고 봤다. 즉 극 중 캐릭터들이 느끼는 고민과 갈등이 현실 속 우리들의 생각과 괴리감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점에서 부조리하고 비합리적 행태가 좀 더 확장된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

▶줄곧 디스토피아를 그리며 한국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대학시절 미술을 전공했다. 미술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어떤 식으로 그려낼 것인가가 중요하다. 보이는 것이 단순하게 눈으로 보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몸으로 체험하거나 느끼는 것도 본다라는 의미에 해당한다. 따라서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을 어떤 식으로 묘사해 나갈지가 미술 작업에선 중요하다. 이를 영화라는 매체로 전환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 것을 어떤 식으로 또 어떤 지점을 포커싱해서 그려낼 것인가가 내가 작업을 해나가는데 있어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지옥'에선 국가적 재난이나 초자연적인 현상 자체보다 상대적으로 무게중심을 두었던 건 추악한 인간 군상이다. 인간들의 잔혹함은 오히려 현실과 굉장히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데,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모양새는 어쩔 수 없이 지독한 염세주의를 풍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느껴지는 B급 감성을 좋아한다."

▶지옥행 날짜를 사전에 고지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를 고지받은 사람에겐 그 시간까지가 현생의 지옥이 아닐까 싶은데 이런 설정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모든 생물은 죽음이라는 분명한 종착지가 있다. 하지만 그 종착지에 누가 먼저 갈지는 알 수 없다. 반면 '지옥'에선 언제 죽을지 미리 고지를 받는다. 이를 인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선택할지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설정의 미묘한 차이만으로 평범한 삶을 살게 될지 극적인 삶을 살게 될지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다만 극 중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존재들이 이질적이긴 하지만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했다. 굉장히 상충되는 부분인데 그 모든 것들을 만족시키는 결과물을 만들고 싶었다."

▶신생아에게 지옥행을 고지하는 장면이 특히 충격적이었다. 이 장면은 사람의 잘못을 신이 심판한다는 것에서 신도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확증하는 계기가 된다. 종교인들은 이 또한 신의 뜻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한데 이 장면을 연출한 의도는 뭔가.

"사실 이 부분에 대한 건 좀 더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한 즉 '지옥'의 후속 이야기를 만드는데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후속 이야기를 통해 보여드리고 싶다."

▶시즌2에 대한 계획을 듣고 싶다.

"이 작품을 구상할 때부터 웹툰 공동 작업을 진행한 최규석 작가와 여러 상황을 놓고 일어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심도있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 독립적으로 하나의 스토리가 될 수 있는 것을 뽑은 결과물이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이다. 이후 이야기에 관해서도 올여름부터 최 작가와 의견을 나눴는데 시즌2를 겨냥한 건 아니고 먼저 만화로 작업을 해놓기로 결정한 상태다. 만화는 내년 하반기쯤 나올 것 같고 시즌2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다."

▶지옥행을 고지하는 존재가 천사다.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가장 끔찍한 말을 한다는 게 기괴하게 느껴지는데 이미지 역시 천사보다는 악마에 가깝더라.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천사의 이미지는 날개 달린 아이나 아름다운 여성이다. 그런데 천사를 표현한 종교화들을 보면 꼭 그렇진 않다. 그중 천사의 얼굴이 거대하게 그려져 있는 종교화가 무척 인상깊게 다가왔다. 거기에서 착안했다. 저승사자들도 상상력을 발휘해 타인에 대한 혐오와 증오로 똘똘 뭉쳐 있는 인간의 모습을 투영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가 B급 감성을 지향한다. 피터 잭슨 감독의 '데드 얼라이브'나 '고무인간의 최후' 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이들 영화가 웰메이드를 지향하는 형태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서브컬처 문화도 존재한다. 내가 메이저한 감성이 아니기 때문에 이처럼 이질적으로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천사의 고지, 지옥의 사자라는 초자연적 현상 앞에 사람들은 현실에 또 다른 지옥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원초적 마음이 아닐까 싶다. 혹자들은 극에 등장하는 인간들이 우매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탈이데올로기 사회다. 그러다보니 누구라도 자신의 존재나 자신이 믿는 것들에 대해 이데올로기를 만들어서라도 기대고 싶어 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옥'에선 공포가 세상 사람들을 죄에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며 더 정의로워야 한다는 교리를 퍼뜨리는 종교집단 새진리회가 등장한다. 그리고 새진리회를 맹신하는 화살촉이란 집단도 존재한다. 그들이 노인 등 약자를 서슴없이 학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피해자들의 무력감이 관객에게 매우 현실적으로 전염된다. 일반 시민도 고지를 받아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중 누군가는 살려주거나 살았으면 좋겠고 누군가는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자 원초적 마음이고 어떻게 보면 그게 바로 인간다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연니버스'로 통하는 연상호 감독 특유의 상상력과 독특한 세계관이 하나로 통합된 작품을 기다리는 팬들도 많은데.

"스티븐 킹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가상의 지명인 '캐슬록'이 말하자면 그의 세계를 통합하고 관통하는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나도 내 작품에 나오는 가상의 지명을 바탕으로 뭔가를 통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가끔 해보긴 한다. 하지만 내가 작업했던 작품들의 IP는 각각의 다른 회사들이 갖고 있기 때문에 '마블 유니버스'처럼 하나로 통합된 세계관을 만든다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여건이 된다면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이긴 하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 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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