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금단의 섬 '저도'...눈 시리도록 아름다운 저도의 겨울바다…수려한 트레킹로드에 '탄성'

  • 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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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1   |  발행일 2022-01-21 제36면   |  수정 2022-01-2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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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전망대에서 본 남해와 거가대교.

그날은 2021년 크리스마스였다. 다사다난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소식이 산타의 캐럴처럼 거리를 점령했다. 역대 대통령 해상별장이 있는 금단의 섬 저도가 2019년 47년 만에 뱃길을 열었다. 그러나 그간 코로나로 저도 운항이 중단되었다가 위드 코로나로 다시 뱃길이 재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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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대형 유람선 해피킹.

경남 거제시 장목면 궁농항은 저도까지 운항하는 유람선 해피킹이 정박하고 있는 작고 정겨운 항구였다. 갑자기 급강하한 수은주 탓인지 궁농항 앞바다는 더 파랗게 보였다. 겨울바람이 세찼지만 승선 정원 506명의 대형 유람선 해피킹이 운항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안전시설이 거의 완벽한 최신형 유람선 해피킹이 드디어 저도로 출항했다. 파도가 제법 있었지만 해피킹은 롤링도 피칭도 없이 미끄러지듯이 항해했다. 한화리조트와 여러 섬들, 오전의 햇살에 얼굴색을 수시로 바꾸는 바다, 섬과 섬을 잇다가 해저로 숨어버리기도 하는 거가대교가 판타지 드림이다. 게다가 유람선 대표이사 김재도씨의 관광 명해설이 귀를 파고든다. 우리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몸의 기억을 넘어 상상과 꿈을 반죽하는 바다. 그 항해는 여행의 절정을 느끼게 한다. 육지가 멀어질수록 파도는 더 아름다운 4중주로 뱃머리에 철썩인다. 겨울바다 특유의 신비로운 경관과 섬이 던지는 실루엣이 내면에서 구원의 종소리로 울리는 환시 환청까지 겪기도 했지만. 자연은 나에게 영원의 문을 두드리는 열쇠를 쥐어 주었다. 정말 그토록 환상에 몰입된 유람선 여행은 처음이었다. 불과 반시간의 선상 시간이었지만 정수리에 활짝 피는 영감(靈感)의 벙거지를 눌러쓴 채 하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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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의 아름다운 숲과 트레킹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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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포진지.

저도 계류부두는 을씨년스러웠다. 좌편으로 발톱을 세운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오는 백사장 뭍의 로드로 걷는다. 섬의 북쪽은 병풍처럼 산이 둘러싸고 남쪽은 완만한 평지로 돼 있다. 3관 4관을 지나 골프장에 모여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출발한다. 이어 황톳길에 들어선다. 황톳길, 김지하는 이렇게 노래했다. "황톳길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해만 타는 곳." 왜 느닷없이 이런 시가 떠올랐을까. 어쩌면 내가 어쩌면 당신이, 우리는 이런 영적 리듬에 목말라 했는지 모른다. 트레킹 로드는 1급수의 열목어처럼 너무 맑고 수려해 연신 탄성을 터트리게 한다.

제2 전망대에 도착했다. 환상의 뷰 포인트다. 겨울바다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고 수평선 끝에 해무처럼 보이는 부산 신항만과 내륙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사이로 거가대교, 오션 뷰가 또 말문을 닫게 한다. 잠시 숨을 돌리고 동백길로 간다. 일제 강점기에 다듬었다는 길은 찬바람에 푸른 잎을 펄럭이며 서있는 나무숲으로 신비했다. 추울수록 더 붉게 핀다는 동백은 언제쯤 활짝 필까. 푸조 나무도 있다. 간간이 찬바람이 불어와 무언가 말하려고 하다가 머리카락만 흔들고 달아난다. 풍개나무도 보인다. 방화수인 아왜나무 군락이 날줄로 서 있다. 나무들은 원시의 음성으로 인간 문명에 경종을 울린다. 저 나무 숲길은 차라리 묵시록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 하계 휴양지로 이용
1972년 대통령 별장으로 공식 지정
일반인 출입 통제됐다가 2019년 개방

저도 제2전망대 '환상의 뷰 포인트'
수평선 끝 부산 신항만·내륙에 감탄
정상 오르면 보이는 제1전망대 정자
진해만 바다·거제도 외항 '몽환적 풍경'



옛 일본군 탄약고와 내무대(막사)를 지나 정상에 선다. 거기에 일본군 포진지와 제1 전망대 정자가 있다. 일망무제의 조망은 가슴을 뻥하게 뚫는다. 앞에 보이는 중죽도와 대죽도, 그뒤쪽으로 가덕도, 그 중간은 해저 침매터널이 이어지고 진해만 바다와 거제도 외항이 몽환의 풍경을 만들며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전망대 주위에는 이런 절경에 얼큰해진 후피향 나무가 꿈꾸듯이 서 있다. 임란 때 옥포해전 승전 안내판을 보고, 섬에서 가장 오래된 해송(곰솔) 앞에 선다. 1637년생 해송은 수고 30m, 둘레 3.5m로 짠한 감동을 주었다. 소나무는 우리 선조가 살아온 삶에 속속들이 스며있는 나무다. '소나무로 집을 짓고 세간을 만들고 땔감으로 쓰면서 살다가 죽으면 소나무 관에 들어가 소나무가 자라는 산에 묻힌다.' 저 해송의 나이테에는 우리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진을 찍었다는 베스트 포토존에서 사진을 촬영한다. 어쩐 일인지 중천에 떠오른 해는 희뿌연 햇무리를 이루고 있다. 거기서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린 햇빛이 바다에 은박지처럼, 안드로메다처럼, 뜨물 빛 가두리를 만들고 그건 황홀한 빈혈의 경치였다. 아 아 하나님. 이건 신(神)의 솜씨였다. 또다시 골프장이 보이고 2.9㎞의 저도 청해대(바다의 청와대) 산책길이 곧 마무리되는가 보다.

저도는 1954년부터 이승만 대통령 하계 휴양지로 이용 되었다가 1972년 대통령 별장으로 공식 지정되면서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었다. 2019년 9월17일 국민에게 비로소 개방되었다. 그러나 소유권 관리권이 대한민국 국방부와 해군이 가지고 있어 저도에 입도해도 아직은 미개방 지역이 남아 있다. 이제까지 8만3천명의 관광객이 다녀간 저도는 다음 달 1일부터 그동안 금지됐던 대통령 별장 주위도 둘러볼 수 있고 사진 촬영도 가능해진다.

1시간30분의 트레킹을 마치고 해피킹에 오른다. 정말 행복했다. 겨울바다와 태고의 꿈을 숨긴 저도에서 우리는 행복을 정복하는데 시간을 마음껏 사용했다. 해변의 백사장이 가물거린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영애 박근혜양이 해수욕하다가 몽돌만 있는 해변에 발이 아프다고 하자 섬진강 모래를 운반해 조성했다는 백사장이 이제 시야에서 사라지고 우리는 궁농항에 얼싸 귀환했다. 우리 일행은 저도 유람선 총괄부장 박귀화씨의 소개로 망봉산 횟집 식당에서 생선구이로 점심을 먹었다. 궁농항 앞바다에서 잡은 살아있는 활어를 손질한 생선구이는 맛이 담백하고 깔끔해 흔한 말로 밥도둑이었다. 식사를 끝내고 사무실에 들려 인근 관광코스를 묻는다. 친절하고 교양이 넘치는 그녀는 궁농항에 있는 망봉산과 여기서 십오분 거리의 매미성 트레킹을 적극 권유한다. 패키지 트레킹을 하라는 것이다.

먼저 궁농항의 불침번 망봉산으로 간다. 해발 약 80m의 망봉산은 과거 러일전쟁 때 초소를 두고 망을 보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아치형 환영문을 지나 찬물 뜰 전망대에 오른다. 이곳 역시 비경이다. 마치 저도와 이란성 쌍생아처럼 원시 숲의 탐험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온다. 길가 나무 사이로 보이는 수려한 바다와 섬들이 스펙트럼을 통과하는 것처럼 다양한 풍경으로 시야를 멍멍하게 한다. 아직까지 은빛으로 물결치는 한바다에 무인도인 말박도, 범여섬, 백서, 갈산도가 한 다발 화환처럼 무장무장 아름답다. 숲 하늘길 지나 바우세 전망대, 대봉 전망대, 모시밭골 전망대를 한 시간 덜 걸려 통과한다. 그건 환희의 시간이고 트레킹을 만끽하는 몰입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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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주차장으로 나와 매미성으로 떠난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라 하지 않던가. 장목면 복항리에 있는 매미성(Mae-mi castle)은 2003년 태풍 매미로부터 농경지를 잃은 백순삼씨가 재해를 막기 위해 17년 동안 홀로 자연 바위 위에 쌓아 올린 성벽이다. 몽돌해변에 네모 반듯한 돌을 쌓고 시멘트로 '땜방'을 해서 차곡차곡 쌓은 것이 이제는 유럽 중세 고성(古城)을 연상케 하는 걸작이 되었다. 그 규모나 디자인이 설계도 한 장 없이 지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 바다 조망도 환몽적이다. 매미성에는 의미가 그리고 정신이 있다. 어떻게 혼자서, 홀로서기도 아닌데 이렇게 고통스런 작업을 계속했을까. 매미성은 특히 젊은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뤘는데 그들이 찾는 의미와 꿈이 있고 이국의 바다 풍경과 마음을 빼앗아 가는 어떤 용기와 정신을 경험할 수 있음으로 해서 일 것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포토존이다. 돌아 나오다가 또 보고 싶어 되돌아 가보는 완전 유럽풍의 매미성. 에메랄드빛의 바다를 거듭 보고 매미성에 고개를 돌리니 얼핏 십자가가 보이는 듯했다. 맙소사 오늘이 크리스마스였지. 언제까지 이 땅이 온전할까. 요한 계시록 한 구절이 생각났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문의: <주>거제저도 유람선 총괄부장 박귀화 (055)636-7033
☞내비주소: 경남 거제시 거제북로 2633-15
☞트레킹 코스: 궁농항 - 저도 산책로 - 저도 망봉산 둘레길 - 매미성
☞인근의 볼거리: 김영삼 대통령 생가, 대금산, 이수도, 맹종죽 테마파크, 거제 포로 수용소, 지심도, 칠천도, 이순신 만나러 가는길, 대우 조선소, 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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