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욱 큐레이터와 함께 '考古 go! go!' ] 신라와 가야 고분 발굴의 성과 ⑤ 금관가야와 대가야의 실체와 영역

  • 김대욱 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
  • |
  • 입력 2022-02-11   |  발행일 2022-02-11 제21면   |  수정 2022-02-11 07:14
대가야 전성기땐 남해안까지 장악, 주요 고분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대

김해 대성동고분군 통해 4세기 금관가야 실체·세력 규명

고령 지산동고분군서 출토된 가야식토기·순장 등 특징

함양 백천리·고성 율대리·전북 삼고리고분군서도 발견

5세기 대가야문화권 상당히 넓은 지역에 걸쳐 형성된 것

2022020601000095500004451
고령 지산동고분군 전경. <출처: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

2013년 경북 고령과 경남 김해·함안이 가야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하면서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오랜 논의 끝에 김해 대성동고분군, 함안 말이산고분군, 합천 옥전고분군, 고령 지산동고분군, 고성 송학동고분군,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고분군 등을 등재 대상 고분군으로 최종 선정했다. 최근에는 이 가야고분군을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World Heritage)으로 등재 신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는 것은 특정 국가나 민족의 유산을 넘어 인류 전체가 보호해야 할 중요한 유산이 된다는 의미이니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고대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발굴을 통해 알게 된 가야 중 전기 가야를 대표하는 금관가야와 후기 가야를 대표하는 대가야의 실체와 영역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990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발굴된 김해 대성동고분군은 김해 가락국의 중심고분이 조사되지 않아 김해가 과연 가락국의 중심지인가 하는 회의론까지 대두되던 때에 그러한 의심을 완전히 잠재우고 금관가야의 실체를 규명하는 중요한 곳이었다. 즉 대성동고분군에서 왕묘로 볼 만한 고분이 발굴됨으로써 금관가야의 실체를 규명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다. 또 이 시기에 구야국의 중심지가 양동리고분군에서 대성동고분군으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대성동고분군에서 출토되는 4세기대 '금관가야양식' 토기의 특징은 노형기대와 외절구연고배, 그리고 격자타날호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유물의 분포로 볼 때 금관가야는 옛 김해만을 중심으로 주변의 진영·진해 일대를 장악했던 것으로 보이며 전기 가야의 중심국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후 복천동고분군이 발굴조사되면서 금관가야와의 관계가 논의되게 되었다. 즉, 복천동고분군이 5세기 이전까지 금관가야와 동맹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고구려 남정을 전후해 신라 문물이 집중적으로 이입되었다고 보았다. 특히 옛 김해만 일대에는 더 이상 대형 고총고분군이 축조되지 않고 금관가야양식 토기가 소멸되며 신라양식토기가 출현한다는 점에서 금관가야가 쇠퇴하고 이 지역에 신라의 영향력이 증대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연대관의 문제와 결합하여 4세기 후반에는 이미 복천동 집단이 신라의 영향력 아래 들어갔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6세기 초에 축조된 창원 다호리B1호분의 사례처럼 이때까지도 가야양식의 토기와 마구가 확인되기도 하는데 이는 금관가야의 중심 읍락이 김해 중심지에서 이 고분군의 배후지인 진영 일대로 옮겨져 신라에 투항할 때까지 존속한 자료로 이해하기도 한다.

후기 가야를 대표하는 대가야에 대해서는 고령 지산동고분군 발굴과 주변 지역 발굴을 통한 대가야 영역에 관한 연구가 주목된다. 즉 그동안 발굴된 지산동고분군에서 '대가야양식'으로 불리는 여러 종류의 토기류와 금동제 환두대도, 마구, 금동제 관, 금제 이식 등 장신류, 마구, 무기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러한 출토유물과 못과 꺾쇠로 결합한 목관의 사용, 세장방형 수혈식석곽, 순장 등 묘제의 특징이 대가야 권역 설정의 기준이 된다.

발굴이 지속되면서 대가야권역의 확장과 관련한 논의도 깊어졌다. 1972년 함양 상백리고분군 발굴조사에서 대가야식 토기와 함께 철판갑옷이 출토되었으며, 1980년대에는 함양 백천리고분군과 남원 월산리고분에서 대가야식 묘제와 대가야양식의 토기가 발굴되었다. 1980년대 중반 합천댐 수몰지역 반계제고분에서는 이 지역 수장급 분묘로 추정되는 고총에서 순장묘와 함께 대가야양식 일색의 토기와 축소모형 농공구, 원통형 기대를 비롯한 대가야권 토기가 출토되어 이 지역이 이른 시기부터 고령의 대가야와 깊은 관계였음을 보여주었다. 1985년 국립진주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한 거창 말흘리고분군에서는 소형 석곽묘와 대가야양식 토기가 출토되었고, 1988년 진주 가좌동고분군, 1989년 하동 고리리고분군, 1989년 고성 율대리 2호분에서도 수혈식 석실 구조에 대가야양식 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대가야문화권이 넓게 형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21053101000915900037552
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

또 1988년 조사한 남원 건지리고분군과 1989년 조사한 두락리고분군에서도 대가야식 묘제에 대가야식 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이 지역까지 대가야권역에 편입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2000년 발굴한 부림면 경산리고분 출토 토기도 대가야양식이 주류를 이루고 이른 시기에는 함안양식 토기, 뒤에는 신라양식 토기가 혼재되어 있다. 서부 경남의 함양 손곡리, 산청 묵곡리 등에서도 대가야 관련 고분이 조사되었고, 1995년 금강 상류의 소백산맥 서쪽 지역인 전북 장수군 천천면 삼고리고분군과 같은 수계의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 황산리고분군에서도 대가야식 묘제와 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발굴성과를 통해 볼 때 대가야가 전성기를 누리던 5세기 후반에는 그 권역이 고령을 중심으로 황강 수계의 합천과 거창, 남강 수계의 함양·산청·운봉,·아영, 섬진강 수계의 남원·임실·곡성·하동·광양·남해안의 여수와 순천, 금강 수계의 장수와 진안에 걸친 지역까지 이른다고 할 수 있다.

<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