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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광훈 소설가 |
소설가를 꿈꾸던 시절, 나의 소원은 나만의 작은 교보문고를 만드는 것이었다. '유쾌한 바나나씨의 작은 책방' 같은 것 말이다. 3평 남짓한 공간, 고급스러운 조명에 굳이 이탈리아산 나무책장이 아니어도 좋았다. 단지 레프 톨스토이, 헤르만 헤세, 윌리엄 셰익스피어, 장정일, 다자이 오사무 등 내가 만나고픈 작가들에게 에워싸여 그들이 들려주는 삶의 지혜를 맘껏 음미하고 싶었다. 일상에 지칠 때면 언제라도 그곳으로 도망가 레이 찰스의 '조지아 온 마이 마인드(Georgia On My Mind)'나 빌리 홀리데이의 '스트레인지 프루트(Strange Fruit)'를 들으며 그들과 농담어린 대화를 나누는 것, 그것만이 내가 잃지 말아야 할 소소한 행복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나를 닮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 고등학생이 되자 나의 교보문고는 뜻밖의 난관에 부딪혔다. 문학 코너여야 할 자리가 참고서 코너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아내는 이제 내 교보문고의 실질적인 매니저였고, '스터디 카페'란 명목으로 내 사랑하는 작가들을 그늘진 구석으로 내몰았다. 그렇게 경쟁에서 밀려난 나의 애장서들은 결국 남산동 헌책방 낡은 서가 속으로 망명해 버렸다. 그것은 차가운 현실이었고, 난 반항할 수 없었다. 난 소설가이기에 앞서 두 딸의 '아빠'였고, 그 은밀한 공간은 나만의 서재이기 전에 내 사랑하는 아이들의 '공부방'이었던 것이다. 물론 소설이란 것이 날 구원해줄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물음도 한몫했으리라.
그렇게 세월은 다시 흘러 올해 둘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며칠 전 아내와 의기투합해 딸의 교과서와 참고서, 문제집을 말끔히 정리했다. 그날 밤 폐허가 되어버린 서재에 앉아 듬성듬성 비어 있는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고전에 대한 지나친 경도와 한없는 편애. 그렇게 간신히 살아남은 저 무거운 것들. 문득 가벼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균형을 좀 맞추어 볼까? 새롭고 재기발랄한 젊은 작가들을 찾아 서점으로 곧장 달려가 볼까? 그래, 봄! 나의 교보문고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광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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