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나쁜 꽃밭, 임은희를 아십니까?

  • 우광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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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22  |  수정 2022-03-22 07:56  |  발행일 2022-03-22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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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훈〈소설가〉

장편소설 '베르메르 vs. 베르메르'를 쓰는 동안 난 거의 화가였다. 아니, 마음만은 파블로 피카소였다. 붓만 들면 언제든 '인형을 든 마야' 같은 작품을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전국아트페어와 유명 화랑, 미대 졸전 등을 줄기차게 쏘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임은희 작가의 '나쁜꽃밭'을 만났다. 나에게 있어 그녀는 봄의 화가이자 한국의 앙리 마티스다. 그녀의 그림을 처음 보는 순간 마티스의 '붉은 조화'(1908년)란 작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붉은 빛으로 가득한 집안에 장식적인 형태의 과일과 화분들이 한 여인을 중심으로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그림. 창밖으로 펼쳐진 녹색의 풀밭과 이름 모를 방초들, 그리고 하얀 나무들로 어우러진 들판은 한눈에 보아도 이 그림의 계절적 배경이 봄임을 알 수 있다. 마티스는 봄과 여름의 화가였지만 그의 내면은 언제나 가을이자 겨울이었다고 한다.

마티스를 뒤로하고 잠시 '나쁜꽃밭' 속으로 들어가 본다. 장지(壯紙) 안은 꽃으로 가득하다. 노란 의자가 꽃이 되기도 하고, 때론 창문이, 새가, 나비가 꽃이 되기도 한다. 소녀의 신체를 이루는 눈과 입술, 코 역시 꽃이다. 보리밭처럼 푸르디푸른 들판이 펼쳐지고, 그 위를 목마와 종이비행기와 소녀가 한가로이 노닌다. 하늘 위를 나는 새들 역시 칸타빌레 선율에 맞춰 춤을 춘다. 꽃밭 위를 탈출한 방초들 역시 소녀의 손짓에 따라 마치 음표처럼 유유히 바람에 나부낀다.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르는 소녀의 긴 머리카락 또한 붉디붉은 꽃이다. 이처럼 그녀가 창조해낸 꽃밭 속에선 청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가 묘한 조화를 이루며 동화(童話)적으로 공존한다. 이것만이 다가 아니다. 대상의 표정은 더욱더 풍부해지고 색채는 점점 화사해진다. 그녀는 오로지 색 하나만으로 승부를 걸려는 듯 꽃밭을 둘러싼 모든 사물에게 강렬한 색채를 부여한다. 그러나 그 형태는 마티스처럼 '고통스럽지도' '거칠지도' 않다. 풋풋한 서정으로 가득한 꽃밭, 그런 샘(spring·봄)의 시원(始原)으로 향하려는 의지. 그녀의 음밀한 광장은 그래서 더욱더 순수하고 마술적으로 나의 시선을 유혹한다.
우광훈〈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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