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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동은 대구미술관 전시기획팀장 |
인간은 일평생 지구 둘레의 2와 2분의1에 달하는 10만5천㎞를 걷는다고 한다. 문명인이라면 이 거리를 맨발이 아닌 신발을 신고 걸을 텐데, 그렇다면 이처럼 오랜 시간 이곳저곳을 누비는 신발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역사적으로 신발은 결혼식에서 장례식 혹은 대관식에서 사형 집행까지 특별한 행사들과 함께하며 그 상징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테세우스의 신발을 생각해 보자. 그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줄 수 있는 신발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테네 왕자로서의 신분을 되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테세우스에 있어서 신발은 부자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위치를 알려주는 중요한 도구였다.
과거 신발은 그 색을 통해서 정치적 지위를 나타냈다. 로마제국 초기에는 황제만이 붉은 가죽 신발을 신을 수 있었는데, 초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샤를마뉴 대제는 금과 에메랄드로 장식한 붉은 가죽 신발을 신었다.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는 자기 자신과 후계자를 제외하고는 어떤 누구도 붉은색 신발을 신을 수 없게 했다. 또 신발은 모양이나 형태를 통해 지도자의 정치철학을 대변하기도 했는데,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많은 사람에게 놀라움을 안겼던 옥스퍼드 구두를 신고 나타난 최초의 정치인이었다. 당시 미국의 저명 인사들은 관습적으로 은으로 된 버클이 달린 구두를 신었는데,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버클이 달린 관습적 구두보다 구두끈이 달린 옥스퍼드 구두가 더 민주적이라고 생각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신발은 청혼이나 결혼 등 남녀 간의 관계에도 많이 등장한다. 괴테는 그의 연인 크리스티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의 땀과 숨결이 담겨 있는 신발이야말로 그 어떤 증표보다 소중한 것이니 신발이 닳고 헐어 더 이상 신을 수 없거든 자신에게 그것을 보내달라고 말했다. 모로코에서는 남성이 길에서 여성 슬리퍼를 발견하면 곧 아내감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속설이 있고, 영국의 전통 풍습에는 젊은 여성이 여름날 저녁 자신의 신발을 옆에 놓고 노래를 부르고 자면 곧 미래의 배우자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 밖에도 신발과 관련된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그만큼 신발은 인간의 삶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하나의 문화이며 매개체란 것이다. 인간의 소망과 바람, 자아의 상징을 넘어 간접적인 의사 표현까지 감당하고 있는 신발. 오늘도 우리의 발을 보호해주고 패션을 완성시켜 주는 신발은 무슨 이야기를 담아가고 있을까.
마동은 대구미술관 전시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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