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세잔과 나

  • 우광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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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29  |  수정 2022-03-29 07:34  |  발행일 2022-03-29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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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훈〈소설가〉

'그림이 자네의 천직이라고 믿는다면, 열심히 노력해서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난 자네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네.'

이것은 에밀졸라가 법학과 미술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던 화가 세잔에게 건넨 말이다. 진정한 예술가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창작에 방해되는 것들, 이를테면 결혼이나 양육·직장 같은 것들과 과감히 절연할 수 있는 그런 결단의 순간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교사'와 '소설가' 사이에서 우유부단하게 방황하다 결국 죽도 밥도 아닌 인생이 되고 말았다. 그래, 우물쭈물하다 내 이래 될 줄 알았다.

세잔의 그림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처럼 작품의 질(質)이 들쑥날쑥했다. 어떤 그림에서는 대가다운 면모가 돋보이는가 하면, 어떤 것에서는 떨칠 수 없는 어색함을 지니고 있어 형편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일관된 작품의 질로 신뢰받는 작가들도 많다. 내가 존경하는 시인 J형(兄)은 B작가의 소설책을 선물 받으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곧장 헌책방에 팔아버린다. 이유인 즉, 그의 글은 항상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굳이 다 읽지 않아도 그 내용과 작의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의 작품은 그 수준이 너무나도 들쑥날쑥하여 흥미롭다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인정.

난 항상 내가 보고 느끼는 것들을 언어로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음에 절망한다. 나와 세잔의 공통점은 한 가지 더 있다. '미(美)의 기준은 항상 새로웠지만, 문학만큼은 고전을 즐겼으며, 늘 책을 가까이하였다'는 점이다.

사족 하나. 어느 날 J형이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란 책을 죽전동에 있는 한 헌책방에 팔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장 그곳으로 달려간 적이 있다. 물론 빼곡히 쌓여 있는 책들 속에서 그 작품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난 결국 성공했고, 주인이 부르는 값에서 단 한 푼도 깎지 않았다. 형의 필체와 밑줄의 흔적들이 따끈따끈하게 남아 있는 그 책은 아직도 나의 서재 한가운데에 소중히 꽂혀 있다.
우광훈〈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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