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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현〈시인·평론가〉 |
도서관 책장에서 치아(齒牙)의 이미지를 발견해 쓴 동시가 있다. 책의 옆면에 손때가 묻은 걸 충치로 묘사했는데, 그만큼 책 읽기란 달달한 섭식행위, 꿀송편을 먹듯 정신적으로 당(糖)을 채워주는 일과 닮았다. 그래, 흠뻑 빠지면 몸에는 좀 해롭겠지. 보르헤스가 눈이 먼 것도 그런 탓이다.
도서관으로 서두를 연 걸 보면 사람은 결국 존재구속적인 모양이다. 필자는 4월 중순부터 용학도서관에서 상주작가로 근무하고 있다. 작가의 출퇴근이라니 아직 낯설지만 초록 잎과 빛이 풍요로운 도서관의 외관과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곳곳에 녹아있는 도서관 내부는 꼭 책 속으로 출근하는 느낌을 준다. 환대와 사랑 받음을 강하게 느끼며 창작의 동력을 얻기. 이 아름다운 용학도서관에서 톡톡 동시를 적는 손, 그림책 읽는 아이, 순한 나무 냄새, 뿔테안경을 고쳐 쓰는 어르신, 골몰하는 식물의 자세로 이루어진 풍경을 기획하고 있다.
아르코의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사업은 작가가 일정 기간 보수를 받고, 관내에 마련된 창작공간에서 집필활동을 하며 지역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주최·주관은 다르지만 작은 서점과 문학관에서도 상주작가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예산이 줄어 작가의 상주기간도 예년보다 줄었다는데, 이 상황에서 내 마음대로 기획 하나를 더 짜본다. 이름하여 '세상에 널리고 널린 카페들과 작가의 협업', 많은 걸 바라지 않소. 커피 한 잔, 테이블 하나 내주시면 되오. 작가가 거주하는 동네 카페들이 대상이며 작가는 자릿값을 대신해 카페의 호스트가 된다. 'A작가가 저녁에 동화 쓰는 카페' 'ㅇ시인이 첫 시집을 엮는 찻집' 같은 부제도 달자. 가끔 독서모임도 하고 글쓰기 상담소도 열고.
몇 년 전 빈(Wien)의 센트럴 카페에 갔을 때 '프로이트, 트로츠키가 단골이었던 카페'라고 했었던 현지인의 자부심에 찬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작가가 줄 거라곤 이름뿐이지만 마음의 여유가 있는 어느 카페가 그 이름과 함께 한다면, 작가와 독자를 잇는 아름다운 물적 토대가 될지도 모른다. 작가가 유명해진다면 로또겠고, 유명해지지 않아도 최소한 작가와 문학을 위해 이바지했다는 뿌듯함이 남지 않을까. 무엇보다 테이블 하나와 커피 한 잔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김준현〈시인·평론가〉
김준현 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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