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산책

  • 이미연 영남대 기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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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12  |  수정 2022-05-12 08:03  |  발행일 2022-05-12 제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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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연 <영남대 기악과 교수>

약 8년간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생긴 나의 습관은 아침저녁으로 산책하기였다. 물론 연주와 콩쿠르가 임박했을 때에는 매일 규칙적으로 할 수 없었지만, 건강도 챙기고 스트레스도 푸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낼 수 있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그리울 때마다 즐겨 찾던 호숫가 'Lietzensee' 에 앉아서 음악을 들으면 집중이 잘 되기도 했다.

얼마 전 이사할 곳을 찾아다니며 가장 우선으로 원했던 것 또한 주위에 산책하기 좋은 곳이 있느냐였다.

이사한 새 아파트에서 5분 거리에는 이름조차도 정겨운 '남매지'라는 곳과 더불어 '남매공원'이 있어 매일 아침 조깅을 하고 활기찬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늑장을 부리다 시간을 놓치면 갈 수가 없기 때문에 일어나자마자 모자를 눌러쓰고 에어팟을 끼고 무작정 나가곤 한다.

직업 특성상 귀가 예민한 나는 평소에도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리에 가장 민감하다. 그래서 남매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 소리를 최대한 안 들리게 해 줄 음악을 골라 듣곤 한다. 조용한 솔로 악기의 곡보다는 대체로 악기 편성이 큰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의 교향곡들을 들으며 시끄러운 찻길을 지나간다.

남매지에 도착한 뒤 탁 트인 저수지와 아름다운 자연들을 감상하며 계속 걷는다. 한 시간짜리 대곡인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다가 처음 보는 특이한 모습의 새나 아침 먹이를 찾는 어미 오리를 쫓아다니는 새끼 오리들의 모습을 구경하다 출근 시간에 늦어 허둥대며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피아노라는 악기 특성상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하다 보니, 특히 많은 사람을 만났다 싶은 날에는 내 시간을 되찾기 위해 혼자 산책을 나서기도 한다. 그럴 때 어김없이 듣는 음악들이 정해져 있다.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혹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이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좋은 사람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음악만이 줄 수 있는 위로가 필요한 날도 있다. 나에게 있어 위의 두 곡은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최고의 곡들이다.

프랑스 작가 프루스트는 100가지 다른 장소를 가는 것보다, 같은 장소를 100가지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라고 했다. 음악은 같은 산책로도 다른 기분, 다른 시선으로 걷고 보게 만든다. 여행에 고픈 사람이 많은 요즘, 다양한 음악과 함께 여행 같은 산책을 나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이미연 <영남대 기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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