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삶을 쓰다 보면 글이 된다

  • 권지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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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18 08:05  |  수정 2022-05-18 08:28  |  발행일 2022-05-18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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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현 〈방송작가〉

요즘은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다고들 한다. 글쓰기 바람이 뜨겁다. 하루 다섯 줄 쓰기, 하루 한 페이지 글쓰기, 일기 쓰기, 메모하기, 새벽 글쓰기 등 덩달아 각종 강좌와 동아리도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요즘 부쩍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사실 글이라는 건 이전에 이야기이기도 하다. 글쓰기 열풍 이전에 이야기의 역사가 있었다. 할머니에게서 할머니에게로, 엄마에서 엄마에게로 전해 내려오던 삶의 이야기다.

나의 할머니는 수다스러운 편은 아니었지만, 때때로 해주던 이야기 가운데 할아버지에 관한 얘기가 있었다. 어느 날 배가 아프다며 앓아누운 할아버지가 며칠 만에 허망하게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였다. 그 옛날 경북 의성 시골에 살았던 할아버지는 없는 형편에 병원은 가보지도 못하였다. 그저 배앓이 정도라는 약방의 말을 믿고 약을 지어 먹다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젊은 날 난데없이 청상과부가 돼 겪어야 했던 할머니의 지난 세월이 얼마나 고약했을지는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그때의 이야기를 할머니는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하며 때때로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언젠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던 내가 말했던 것 같다. "드라마 이야기 같아요"라고.

그런 이야기들은 방송하다가도 만난다. 대개 일반인을 인터뷰할 때인데, 시장통에서, 버스 운전석에서, 공장에서 일궈온 곡진한 삶의 이야기를 풀어놓던 분들은 어느 순간 그런 말들을 한다. "내 살아온 거를 글로 쓰면 한 권은 더 나올끼라요(나올 수 있다)" "책이 따로 있나. 내가 살아온 기(게) 책이제" "내 유식하지는 몬해도(못해도) 물어보믄(물어보면) 모르는 거는 음따(없다) 아닌교(아닙니까)"

글쓰기란 이렇게 살아 꿈틀대는 이야기를 문자로 단정하게 옮기는 일이다. 그때 그 기억들을 글로 옮기며 지난 아픔을 보듬고, 서러움은 다독이고, 좋았던 것들을 추억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갈 날들에 대한 동력을 얻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글을 잘 쓰는 방법이란 따로 있지 않다. 부지런한 모든 삶이 그 어느 것보다 빛나는 한 권의 책과 같은 것처럼,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귀한 글감이 되고 언젠가의 글이 된다.
권지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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