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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지현 <방송작가> |
첫 걸음마, 덧셈 뺄셈, 받아쓰기, 줄넘기. 나는 뭐든 남보다 늦었다. 지금도 나는 유행이나 트렌드를 잘 따라가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세 사람 걸러 한 사람 다 걸린다던 코로나도 유행의 정점을 지나 보내고 난 뒤 지난주에야 뒤늦게 확진이 되었다. 안 하고 지나가면 좋았으련만 남들 하는 건 다 하는 건가 싶어 쓴웃음이 나왔다.
그간 주변에서 코로나를 겪은 사람들을 종종 봐 왔던 터라 검사부터 격리까지 나름 신속하게 대처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후부터였다. '오미크론'의 경우 인후통이 심하다는 말을 들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통증의 크기와 심각성은 내 예상을 크게 빗나갔기 때문이다. '인후통'이란 단어로만 인식하고 있던 감각이 내 세포 속으로 후벼 파고들어 오자 나는 더 이상 이 고통을 세 음절의 단어로만 설명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코로나가 가져온 통증은 그 이전 어떤 질환으로 겪었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목구멍부터 폐로 이어지는 기관지 전체를 누가 수세미로 긁은 뒤 그 위에 고춧가루를 뿌리고선 뜨거운 물을 들이붓는 것 같았는데, 밤새도록 이어지는 기침은 안 그래도 아픈 기관지를 자극해 사람을 나동그라지게 했다. 기침 한 번이면 뒷덜미까지 식은땀이 흘렀다. 그렇게 사흘을 앓았다.
앓고 나서 알았다. 짐작하는 것과 알게 되는 것, 아는 것과 보는 것, 보는 것과 겪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그간 너무 쉽게 말해왔다는 것을. 확진자에게 왜 어쩌다 그렇게 되었냐는 식의 책임추궁성 질문과 이왕 이렇게 된 거 푹 쉬라는 식의 위로 아닌 위로의 말과 난 걸리지 않을 거란 근거 없는 확신성 발언들은 가벼운 의도와 상관없이 받아들이는 당사자에겐 무거운 돌덩이 같았을지 모른다.
옛날 어느 광고에서 배우 신구가 '니들이 게 맛을 알아?' 했던 것도 그런 것이었겠지. 웃어보자고 한 말 같지만, 그 이면엔 먹어보지 않고 음미해보지 않고 단편적으로 안다고 하지 말라는 뼈 있는 충고. 결국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한 공감이란 짐작에 불과한 것이다.
어떤 것도 온전히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은 다음에야 안다고 할 수 없다. 남들보다 뒤늦게 찾아온 코로나로 나는 일상에서 쓰던 공감이라는 말의 정의를 다시 내리게 됐다. 공감은 알고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권지현 <방송작가>
권지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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