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별 안 그리고 백석 읽기

  • 김준현 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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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13  |  수정 2022-08-08 07:51  |  발행일 2022-06-13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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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시인·평론가〉

일을 위해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과 '흰 바람벽이 있어'를 읽을 때가 있다. 입시학원에서의 문학 지문 분석은, 주제를 찾고 운율을 형성하는 지점을 체크하고 밑줄을 그어 문장과 행간에 일차원적 알레고리로 전환 가능한 의미를 채워넣고 별을 그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논리 정연한 설명으로 바꾸어 모호하고 아름다운 시의 호흡에는 무심해지는 작업. 해부의 과정을 반복해 거치고도 화자의 육성이 여전히 뚜렷한 것은 이 시들이 온몸의 감각기관으로 세계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태의 외로움을 화자로 두고 있기 때문일까. '만주로 가서 시 백 편을 건져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제 존재 기반을 이루고 있던 모든 것을 내버려두고 떠난 그맘때 백석의 삶은 설명 불가능한 영역, 상식의 영역 바깥에서 홀로 박동하는 몇 만 년 전의 별빛과 같다.

역시나 일을 위해 이 시들을 읽을 때가 있다. 도서관이나 책방에서의 시집 읽기 모임 혹은 창작을 위한 수업이다. 학원과 달리 주제 찾기도 밑줄 긋기도 별 그리기도 없다. 백석 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잠깐의 침묵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와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릴케를 가을밤의 별자리처럼 연결할 줄 아는 이 아름다운 시선을 애써 의미의 영역으로 끌어당기지 않을 때 감지할 수 있는 맥박이다.

새삼 드는 의문 하나. 그럼 청소년들은 왜 시를 의미의 영역에서만 읽도록 배워야 하는 걸까? 향유의 자유를 박탈하는, 어찌보면 미안한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전달자로서, 특정한 답을 미리 예비해둔 채 '너'의 읽기를 능력의 개념으로 재단하는 입시 교육 방식은 창작자이자 비평가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 내게 언제나 딜레마다. 정해진 가이드라인대로 수업하지만 꼭 이런 형태의 읽기만 있는 건 아니라고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로 귀띔도 한다. 일종의 샛길을, 불분명하고 모호한 미지가 있음을 알려주는 사람처럼. 진지하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상당수가 서울 및 수도권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할 텐데, 중심이 아닌 변방 만주로 가 혼자가 된 순간 우러나온 백석의 목소리를 괜히 전형적인 설명으로만 소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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