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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지현 (방송작가) |
"나 사실 권 작가랑 친해져서 너무 좋아." 최근 근 5년을 알고 지낸 동료작가가 뜬금없이 나에게 툭 던진 말이다. 뭔가 대단한 상황에서도 아니고, 차를 타고 가다 유턴을 하기 직전 핸들을 꺾으며 혼잣말인 듯 툭 그렇게. 그리고 그 말이 내 마음을 툭 건드렸다.
서로 일하는 방송사가 달라 대단히 교류가 있다거나, 엄청난 동료애를 쌓을 시간이 있던 사이도 아니었다. 다만 지역 방송작가들의 권익을 위해 모인 단체에서 서로 직함 하나씩을 맡아 활동하다 보니, 이런저런 일들로 동선이 겹치거나 함께해야 할 일이 있긴 했다. 그런 기회들이 한 번 두 번, 일 년 이 년이 쌓이고, 한두 마디 주고받던 사이에서 집을 오갈 정도로 가까워지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작가가 나와 친해져서 기분이 좋다고 생각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우리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지금 좋다 한들 앞으로 계속 좋으리란 보장도 없고, 지금 싫다고 해서 외면을 해 버리는 것 또한 인생에 있어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춘기가 지나면 우리는 진짜 마음은 어느 정도 가린 채 두루뭉술하게 적당한 선까지만 관계를 맺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딱히 큰 의미 없는 말일 수도 있고 그냥 지나가는 인사말 정도일 수도 있는 "좋다"는 그 한 마디가 나는 참 소박하게도 좋았다.
책 '말의 품격'에는 그런 내용이 있다. "얼굴을 마주하고 반찬을 권하는 순간 세상살이에 지친 고단함이 봄날 눈 녹듯 사라지고, 식사 자리가 단순히 끼니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고.
그렇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고 말을 건네는 연습이 필요하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어느 초콜릿 과자의 광고는 그래서 순전히 거짓말이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진심이란 세상에 없다. 독심술가가 아닌 이상.
어느 겨울 저녁 검은 비닐봉지에 귤 2천원어치를 사서 슬쩍 건네주듯 그녀가 슬쩍 나에게 던진 "좋다"는 말은 그래서 더 따뜻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따뜻함에 뜨끈해진 나도 미처 전하지 못한 진심을 전하고 싶다. 나도 친구가 생겨서 너무 좋다고. 시간이 쌓아준 인연에 감사한다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인생 각자 살아가느라 언제 또 사이의 간격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삶의 어느 시절 좋은 인연으로 남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권지현 (방송작가)
권지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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