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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명재<시인> |
가끔 시나 시인을 대단한 존재로 생각하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시인도 떡볶이를 좋아하고 발톱을 깎을 땐 등을 굽히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시가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그때마다 궁금했다. 어떻게 시가 위로가 되었던 걸까.
시는 그저 강처럼 있을 뿐이다. 시 속에는 위대한 정신도 깨달음도 없고 시는 그저 우리 곁에 있을 뿐이다. 그러다 가끔 우리는 시에 손을 담근다. 누군가는 목을 축이고 누군가는 유골을 뿌리고. 그렇게 저마다 달리 강을 마주하면서 우리의 눈은 강물처럼 일렁거린다. 만약 시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건 강처럼 낮게 곁을 흐르기 때문이 아닐까.
부처의 말년 이야기를 사랑한다. 노년의 그는 병약한 육체로 설법을 하려고 험난한 여행을 지속했다. 그러다 공양을 받은 상한 고기를 먹고 난 뒤에 극심한 병을 앓다가 열반에 들었다. 막바지엔 통증과 하혈이 심각해져서 몇 번이나 쉬다가 걸었다 한다. 그러니까 그는 '우리의 모습'으로 떠났다. 어떤 초월자나 대단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떨며 울고 토하고 겨우 살아내면서 생을 지속하는 우리로서 떠났다. 그리고 그는 슬퍼하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사랑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일지라도 마침내는 달라지는 상태, 별리의 상태, 변화의 상태가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 아난다야, 태어나고 만들어지고 무너져가는 것, 그 무너져가는 것에 대해 아무리 '무너지지 말라'고 만류해도 그것은 순리에 맞지 않는 것이니라."('대반열반경' 中)
시도 그렇다. 시는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다. 높은 정신도 은총도 아니다. 그런데도 시가 가끔 위로가 되는 건 무너져감에도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안간힘의 존재'(우리)를 그리기 때문.
"지금 우리는 술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네. 양념장 밑에 잦아든 살은 순하고 씹히는 풋고추는 섬덕섬덕하고 저녁 스며드네.// 마음 어느 동그라미 하나가 아주 어진 안개처럼 슬근슬근 저를 풀어놓는 것처럼 이제 우리를 풀어 스며드는 저녁을 그렇게 동그랗게 안아주는데,// 어느 벗은 아들을 잃고 어느 벗은 집을 잃고 어느 벗은 다 잃고도 살아남아 고기를 굽네.// 불 옆에 앉아 젓가락으로 살점을 집어 불 위로 땀을 흘리며 올리네." (허수경, '저녁 스며드네' 中)
저녁이 오고 온 세상이 어둑해진다. 어떤 이는 아들을 잃고 어떤 이는 집을 잃고 그렇게 모두가 상처 입고 멍든 그대로 땀을 뻘뻘 흘리며 고기를 굽는다. 그렇게 저녁은 공평하게 스며든다. 그렇게 시는 동그란 맘으로 둥근 자리에 동그래진 어깨들을 쓰다듬는다.고명재<시인>
고명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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