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범의 피플] 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유럽 우크라전쟁發 퍼펙트스톰 직면해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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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26   |  발행일 2022-07-27 제13면   |  수정 2022-07-2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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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 국제관계학과 안병억 교수가 인터뷰에 응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진범 논설위원



에너지, 식량 위기에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주화파와 주전파의 갈등 본격화
1년 이상 계속될 가능성과 8개월 이내에 휴전하고 평화협정 맺는 시나리오 공존

에너지 위기 독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조속한 평화 원하는 국민이 50% 달해

 

유럽이 난리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신음하고 있다. 에너지와 식량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인플레이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지난 21일 기준금리를 11년만에 0%에서 0.5%로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 해결 조짐이 보이지 않는 데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에너지 목줄을 조이면서 다가올 겨울에 더 큰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유럽의 인내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유럽 내에서 주화파와 주전파의 목소리도 동시에 터져나오고 있다. 에너지 가격 인상과 인플레이션을 자유를 지키기 위한 비용으로 여기며 감내했던 분위기가 균열을 보이는 상황이다. 유럽의 '단일 대오'가 흐트러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도대체 유럽은 어디로 갈 것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끝날 것인가. 지난 22일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안병억 교수를 만나 유럽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 교수는 '유럽 전문가'이다. 최근 유튜브 유명 채널인 '삼프로TV 경제의 신과 함께'라는 프로그램에 초대를 받아 화제를 모았다.

▶유럽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G2(미국, 중국)의 시대지만, 가끔 G3라고 이야기하는데 G3에 유럽이 들어간다. 27개 회원국이 모인 유럽연합(EU)을 흔히 유럽이라고 한다. 유럽은 규범적 권력이다. 군사 강국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세계 최대의 단일 시장인 데다 국제 정치, 경제에서 규범을 만들고 확산한다는 의미에서 규범 뒤에 파워(power)를 붙였다. 그린 딜이 대표적이다. 유럽은 2050년까지 세계 최초로 탄소중립 대륙을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유럽이 선도하면서 미국 바이든 행정부도 비슷한 목표를 제시했고, 우리나라도 2050년까지 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이 군사강국이 아니라고 했는데, 원래 제국주의 원조 아니었나.
"세계 1, 2차 전쟁을 거치면서 국제 무대에서 변방으로 전락했다. 유럽에선 세계 1, 2차 전쟁을 '내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유럽은 통합을 통해 국제 무대에서 영향력을 찾고 위상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럽 통합의 목표는 평화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이 군사력을 증강하고 재무장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군사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나.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유럽연합이 군사 지원을 처음 했다. 군사 지원은 금기였는데 회원국의 정치적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럽 통합을 얘기할 때 경제도 있지만, 외교 안보도 포함된다. 유럽연합은 사실 위기 대응을 위해 회원국에게 외교 안보 지원을 꾸준하게 해왔다. 다만 위기 대응은 어디까지나 방어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지, 미국이나 중국 같은 군사 강국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에 의존적인 외교 안보를 독립적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는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EU 주권이나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목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유럽이 퍼펙트스톰(동시다발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도 통합이 유지될 것인가.
"유럽이 퍼펙트스톰 앞에 놓인 것은 맞다. 에너지, 식량 위기에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주화파와 주전파의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 러시아가 겨울에 가스를 끊을 가능성이 높은데, 유럽을 분열시키기 위해서이다. 주화파는 빨리 휴전하자는 입장이고, 주전파는 푸틴에게 확실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탈리아의 정치 위기도 문제다. 이탈리아는 그리스와 다르다.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가 EU에서 차지하는 경제 규모가 54%에 달한다. 이탈리아는 EU 3위의 경제 대국인데, 국채 금리가 치솟으면서 경제 위기설이 나돌고 있다. 이탈리아 마리오 드라기 총리의 사임으로 9월 조기 총선을 치른다. 극우 정당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유럽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주도한 드라기 총리와 달리 극우 정당은 친러 성향이다. 유럽 단결의 악재인 셈이다. 유럽으로선 우크라이나 전쟁이 빨리 종결된다 하더라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할 것인지, 에너지 지정학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가 화두다. 외교는 가치와 이익의 접점을 찾는 과정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끝날 것 같은가.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1년 이상 계속될 가능성과 8개월 이내에 휴전하고 평화협정을 맺는 시나리오가 공존한다. 미국과 유럽이 무기 지원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결사 항전하면서 러시아로 하여금 협상에 나오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만드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인데, 지금 보면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더 높다. 푸틴이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이 되면 유럽은 어떻게 되나.
"러시아가 겨울에 가스를 끊을 수 있다. 푸틴이 가스를 무기화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쓸 수 있다. 러시아가 가스를 차단할 경우 독일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된다. 2010년 유로존 위기 때보다 더 안 좋아진다는 의미다. 유럽 경제의 침체는 세계를 위기로 내몰 것이다. EU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 중국과 미국이다. 우리나라 교역의 4분의 1이 중국이다. 유럽 경기침체는 중국의 유럽 수출을 줄이고, 우리나라의 중국 수출도 줄일 것이다. 미국과의 수출도 마찬가지다. 2009년 미국발 경제 위기 못지 않은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은 독일은 지금 어떤 상황인가.
"독일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조속한 평화를 원하는 국민이 50%에 달한다. 그만큼 견디기 힘든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러시아가 실제 가스를 끊으면 1월쯤 독일의 가스는 동이 난다. 독일의 비상계획을 보면 공장에서 먼저 가스를 줄이게 돼 있다. 가스 공급이 안되면 결국 가정에도 가스를 줄일 수밖에 없다. 독일은 벌써부터 난방 온도를 17도로 낮췄다. 샤워 시간도 하루에 3번으로 정했다. 독일 가정의 가스가 확 줄어든다면 시민들이 가만히 있을까. 유럽을 분열시키는 게 푸틴의 노림수이기 때문에 전쟁이 장기전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위기에도 유럽은 그린 딜을 강력하게 추진할까.
"과감하게 추진할 수 밖에 없다. 그린 딜을 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규범적 권력이라 더 강하게 밀고 나가는 측면도 있다. 독일에는 경제기후부가 있다. 경제부하고 기후부가 별도로 있다가 합쳐서 만든 슈퍼부이다. 경제 정책이 기후 위기에 어긋나면 거부권을 행사한다. 그만큼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 의지가 강력하다."


▶유럽과 중국의 관계도 흥미롭다.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중국이 일대일로를 하면서 옛 소련에 있던 17개 나라와 함께 '17 플러스 1'이라는 경제 포럼을 만들었는데, 지난해 말 균열이 생겼다. 타이완하고 관계 개선에 나선 리투아니아에 대해 중국이 보복하면서 유럽연합 회원국을 갈라치기 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EU의 중국 대응은 파트너, 경쟁자, 체제적 라이벌로 표현한다. 기후 위기 대응에선 파트너, 경제는 경쟁 관계이다. 중국이 권위주의적 체제이기 때문에 체제적으로 라이벌이다. EU는 중국에 맞서 미국과 함께 공동 전선을 펴고 있다. EU·미국 무역기술위원회(TTC)를 출범시켜 기후나 청정기술에 대한 국제 규범화를 시도하고 있다."


▶유럽과 우리나라의 관계는 원만하다고 봐야 하나.
"유럽 입장에서 아시아 나라 가운데 우선순위를 따지면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 인도 다음 정도이다. 우리나라와 EU는 아주 원만하다고 볼 수 있다. 정치 체제가 같고, 경제적으로 FTA(자유무역협정)를 맺었다. 위기 관리 참여 협정도 체결했다. 해적 소탕 등에 함께 한다는 게 위기 관리 협정이다. 유럽에 대해 중요한 걸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나아갈 길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유럽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조진범 논설위원 jjcho@yeongnam.com

■안병억(57) 대구대 교수는 충남 당진 출신으로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를 졸업했다. 연합뉴스와 YTN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 30대 중반에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유럽통합을 전공해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과 독일의 유럽통합 정책에 대한 비교가 박사학위 논문 주제였다. 5년 10개월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 아시아경제와 파이낸셜뉴스에서 잠깐 기자로 활동했고, 전문계약직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일하기도 했다. 2012년부터 대구대 사회과학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안 교수는 다양한 경험과 관련, "저는 원없이 살았는데 아내가 많이 고생했다"고 웃었다. 지난 2016년 12월부터 대구대 교수연구동 사무실에서 수업의 일환으로 제자들과 함께 주간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을 운영하고 있다. 유럽과 관련된 글로벌 이슈를 소재로 지금까지 268개의 오디오물을 만들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가 영국 국민의 찬반 투표로 결정된 해가 2016년이다. 브렉시트는 2020년 1월 31일 단행됐다. '한눈에 보는 유럽연합' '미국와 유럽연합의 관계' 등 전공서적을 10여권 냈다. 교양서로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를 출간했다. 최근에는 '홈즈의 비밀을 푸는 12가지 키워드'라는 부제가 붙은 '셜록 홈즈 다시 읽기'를 펴냈다. 안 교수는 "셜록 홈즈를 통해 본 영국의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썼다"고 밝혔다. 실제 책에는 셜록 홈즈가 탄생한 배경이나 제국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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