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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하 (작가) |
지난겨울, 나는 친구와 함께 방구석에서 OTT 서비스를 통해 '루카'를 본 적이 있다. '루카'는 두 바다 괴물 소년이 해변마을의 인간 세상을 궁금해하면서 일어나는 모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지는 탓인지 나는 겨울을 보내는 동안 자주 우울감을 느꼈는데, 여름 풍경을 다양한 색채로 담아낸 '루카'를 보며 울적한 기분을 어느 정도 털어낼 수 있었다.
내가 '루카'를 좋아하는 이유는 앞서 말한 아름다운 장면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하는 연출 때문이다. 루카가 또 다른 바다 괴물인 알베르토와 만나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며 바라본 마을 풍경에 호기심을 느끼는 장면과 두 괴물 소년이 불안함을 느끼며 마을에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 장면에서 나는 한껏 몰입할 수 있었다. 사실 '루카'를 보는 내내 편한 마음은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은 바다 괴물을 낯설어하고 두려워하는 동시에 혐오감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런 혐오로부터 루카와 알베르토가 상처받고 슬픔을 느꼈을 때 나는 이 이야기가 소년들에게 따뜻한 방향으로 마무리되길 바랐고, 비로소 인간과 바다 괴물 사이에 화합이 이루어지는 장면으로 영화가 막을 내렸을 때 나는 안도했다.
'루카'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 나는 이야기의 감흥을 놓지 못한 채로 친구에게 쉼 없이 감상을 털어놓았다. 나는 이야기를 감상한 후에 어떤 장면이 와닿았고 왜 그렇게 좋았는지를 줄줄이 말하는 걸 즐겼다. 그러나 친구는 나처럼 오랫동안 감상을 늘어놓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고,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으며 멋쩍게 내 얘기를 멈추게 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그렇기에 어느 날 친구가 '루카'의 아트북을 구해 내게 선물해주었을 때 뛸 듯이 기뻤다. 아트북의 포장을 뜯으며, 문득 왜들 그렇게 좋아하는 이야기의 작품집이나 아트북을 사 모으는지를 깨달았다. 아트북을 손에 쥐니 비로소 루카와 알베르토와 함께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름답고 좋은 이야기들이, 만화와 애니메이션과 영화와 소설 등의 콘텐츠들이 지천에 있으며 그것을 쉽게 찾아서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끔 벅차고, 감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콘텐츠들 속에서 사람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좋아하는 이야기가 하나 정도는 있을 거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어쩐지 세상에 애정을 느끼게 된다.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가 무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사람들이 짓는 표정 또한 상상해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근하 (작가)

근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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