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우리말 겨루다

  • 성병조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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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26 07:26  |  수정 2022-09-26 07:28  |  발행일 2022-09-26 제20면

성병조_문화산책2022년9_10월
성병조(수필가)

평소 KBS '우리말 겨루기' 프로를 열심히 시청한다. 볼 때마다 직접 참여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실력은 변변찮으면서 객기가 넘쳐서일까. 대구 지방 순회 예선에 합격한 데 만족해야 할 사람이 서울까지 올라간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말 달인들은 과연 어떤 모습이며, 내 실력은 어디쯤일까? 뜻이 이루어져 막상 출연하라고 하더라도 부족한 실력으로 망설일 처지에 욕심을 부리다니. 다행히 서울서도 예심 합격 후 즉석 면접까지 거치면서 최종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절실하면 얻어지는 것일까. 드디어 출연 기회가 다가왔다. 방송사서 녹화 일자를 알려온 후부터 조바심이 일었다. 며칠 후 구성 작가가 전화를 걸어와 인터뷰를 요청한다. 예심 등록부터 면접 때도 담당자가 개인 모습을 열심히 컴퓨터 입력하는 것을 보았는데 더 필요한 부분이 있는가 보다.

문제를 푸는 동안 대화하기 위한 기초 자료 수집이다. 내 실상을 샅샅이 다 파헤친다. 이렇게 상세하게 파악해야 방송의 흥미를 더할 수 있단 말인가. 출생지부터 성장 과정, 직장 생활, 그리고 가족 상황까지 세세히 묻는다. 맞장구를 잘 쳐 준 덕분인가. 인터뷰는 예상을 뛰어넘어 무려 세 시간 반 가까이 이어졌다.

녹화 날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려 7시간 동안 진행된다. 방송 리허설부터 스튜디오 녹화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복잡 세밀한 절차를 거치는 줄 몰랐다. 비록 기대한 만큼 성과는 거두지 못해도 출연의 꿈을 달성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만인이 보는 TV에서 부끄러움도 잊은 채 어설픈 몸짓을 정신없이 펼쳐 보였다.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있을까. 점수에 연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치열하게 공부한 것도 아닌 '어공'처럼 뛰어든 게 아니었던가. 아는 것이 생각나지 않아서, 단추 누르는 게 늦어서, 젊은 사람들의 순발력에 뒤져서 등의 변명은 필요 없다. 우리말 프로가 좋아서, 열렬히 짝사랑하다 오랜 꿈을 이룬 것인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여러 화제를 안겨준 우리말 겨루기에 출연한 지 3년이 되었다. 이태가 지나면 재출연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출연한 적이 있는 낯익은 얼굴들도 종종 보인다. 가족들은 우리 집 대표 선수로 한 번 더 도전하라고 부채질한다. 하지만 실력은 차치하고 무대에 서고 싶은 용기가 나지 않는다.

성병조<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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