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그저 그런 일상이 아닌

  • 이시영 달성문화재단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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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10  |  수정 2022-11-10 07:49  |  발행일 2022-11-10 제17면

[문화산책] 그저 그런 일상이 아닌
이시영 (달성문화재단 대리)

아침의 공기가 가볍게 코끝을 스쳐 간다. 가을과 채 친해지기도 전에 야속하게도 겨울이 한 발짝 이르게 찾아왔다는 것을 몸으로 먼저 느낀다. 사계절 모두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지만 특히나 꽃과 단풍이 다채로운 색으로 피어나는 계절인 봄과 가을은 짧은 시간 스쳐 가는 만큼 아쉬움을 더 크게 만드는 것 같다.

여느 직장인이 그렇듯 출근, 일, 퇴근의 반복된 일상 속에 무디어져 가며 계절이 바뀌어 가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기획자로서의 반성이 먼저 든다. 기획자는 무릇 익숙함에 젖어 들지 않아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오늘 하루를 그저 그런 일상으로 치부(置簿)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사회초년생인 시절에는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이제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고자 다짐하고 있는 자신을 자각(自覺)한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다 낯설지 않은 노래를 우연히 들었다. 노래를 가만히 듣다 보니 20대 초 대학생 때 나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공모전, 홍보대사 등의 수많은 대외활동, 자격증 공부 등 취업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열렬히 쏟으며 노력하고 있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또 어느 날은 스마트폰 속 사진첩을 뒤적이다 첫 해외여행을 갔던 사진이 문득 눈에 띄었다. 그저 그런 순간으로 찍었을 사진이겠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출발하기 전 여행의 설렘과 도착 후 앞으로의 기대감을 품었던 나의 모습이 보였다.

참으로 신기하다. 음악, 사진, 영화 등은 그때의 내가, 그때의 우리가 어떤 모습, 생각, 감정으로 있었는지 떠올리게 하는 신비로운 매개체(媒介體)다. 낡고 오래된 기억의 수납장에서 빛바랜 추억을 꺼내어 잠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문화 기획을 하면서 항상 가슴에 품고 있는 다짐이자 작은 소망이 있다. 내가 기획한 공연, 축제, 전시 등을 통해 지역민들이 시간이 흘러 그 순간을 떠올리며 평범한 하루가 조금이나마 특별한 하루로 기억에 남았으면 하는 것이다.

'예술은 일상생활의 먼지를 영혼으로부터 씻어 낸다'는 파블로 피카소의 말이 있다. 오늘 하루 친구, 가족, 연인과 함께 음악, 영화, 그림, 사진 등 다양한 문화예술을 통해 오늘을 그저 그런 일상이 아닌 특별한 하루로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이시영 〈달성문화재단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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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달성문화재단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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