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생은 잠시 산책 나온 나들이인가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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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11 17:41  |  수정 2023-01-12 08:22  |  발행일 2023-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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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가 연극과 같아 '세상은 무대고 인간은 배우'라고 한다. 삶이란 태어난 환경 여건이나 운명이라는 굴레로 인하여 행·불행이 결정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생을 저울질하며 특출한 연기력으로 욕망의 목표를 달성할 때도 더러 있으나 결국 자기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숙명적으로 삶이 종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구나 오늘날에는 권력과 황금만능주의로 인하여 금수저로 태어나면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세상이 돼버렸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옛이야기가 된 듯하다. 그래서 감성적인 측면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한 경우가 많다.

바람직한 삶을 영위하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덧없는 삶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허탈감이다. 즉 만족스럽지 못한 삶에 대한 불만이 분노로 쌓인다. 이러한 누적된 억눌림이 역설적인 바람으로 승화돼 희망과 분노가 한 데 어울려 응어리진 한을 풀려는 노력이 무속이나 종교적인 차원에서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명분에 의한 모양새뿐이었고 오직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삶이란 모르는 저세상에서 이생으로 잠시 왔다가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일장춘몽'이고 '나그네길'이며 잠시 산책 나온 '나들이'라고 한다. '돌아간다'는 것은 이생에서 목숨이 다하여 원래의 곳으로 간다는 것이고 이생으로 오기 전에 있었던 곳, '저세상'으로 간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저 세상은 내가 원래 있던 고향이고 내가 사는 이생은 타향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현대는 교통의 발달과 생활 여건 향상으로 거주 환경이 원활하고 자유로워져 출생지에 의한 고향이나 타향의 개념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의 MZ세대가 갖는 이생에서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역시 타향에서 고생스럽게 사는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시대에 편승하여 타향이란 이생에 여행을 와 여행객이 되어 즐기고 있는가.

노랫말에 '타향도 정들면 고향이라' 했으니 타향도 타향살이가 아닌 여행객이 되어 즐길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희망과 꿈을 이룰 수 없는 사회적 구조로 세상살이가 힘들기 때문이다. 짧은 인생에 바둥바둥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보람된 삶이란 심리적인 안정과 정신적인 만족감이 동반돼야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MZ세대가 갖는 생활방식이 삶을 즐기고 존재감을 극대화한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신주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정을 이루고 살아갈 자신이 없는 것이며 동반자에 신경 쓰기 싫고 자식에게 메이기도 싫으며, 가족이란 카테고리에 종속되기도 싫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우려스러운 점은 자기중심적이며 즐기기 위한 소비는 결국 모든 영역에서 소멸에 이르는 것으로 인구절벽과 국가 부도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진리를 철학적인 알맹이는 빼먹고, 모양새만 실천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분명한 것은 현시대의 가치 있는 삶은 후대의 업적으로 남아 소중한 유산이 돼 미래를 이어주는 이정표가 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겠다.

예단할 순 없지만, 타향살이든 여행객이든 주어진 현실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혜안이 중요하다. 행복과 불행은 결코 연기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겠기에...,

김일환 (화가·전 대구미술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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