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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남숙의 첫 에세이 '가만한 지옥에서 산다는 것'은 첫 소설집을 낸 뒤 한 소설가에게 찾아오는 생활의 변화와 그와는 무관하게 오래 이어져 온 감정의 파고가 사실적으로 드러나 있다. |
2015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해 2020년 첫 소설집 '아이젠'을 펴낸 소설가 김남숙의 첫 번째 에세이다.
첫 소설집을 출간할 당시 김남숙은 "익숙해져 버린 비루한 삶의 모습을 독창적인 화풍으로 새롭게 형상화하는 작가"라는 평을 받았다. 그의 소설은 자주 비관적이고 대개 우울하다. 날것의 이미지와 언어들로 날 선 인상을 주면서 정을 주지 않으려 애쓰는 문장이 주를 이룬다. 그러면서 정에 약하고, 정 때문에 자주 슬퍼지는 사람들을 그린다. 무기력하고 비관적인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작가에게는 어떤 생활과 생각이 자리하고 있을까? 왜 그렇게 써야 했고, 그렇게밖에 쓸 수 없었을까? 에세이를 쓰는 내내 소설가 김남숙은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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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숙 지음 민음사/228쪽/1만4천원 |
이 책은 첫 소설집을 묶은 뒤 한 소설가에게 찾아오는 생활의 변화와 그와는 무관하게 오래 이어져 온 감정의 파고가 사실적으로 드러난다. 소설을 쓰는 일과 읽는 일, 그 반대편에서 꾸려지는 생활의 일을 담고 있다. 모르는 사이에 소설과 삶을 연관 짓게 되는 에피소드들이다.
특히 주로 먹고 마시고 떠나간 누군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일상들로 채워진다. 또 현재의 나와 가장 멀었던 과거의 나를, 과거의 친구를, 과거의 공간을 소환하는 지독한 습관들로 가득하다.
어쩌면 김남숙이 머물기에 가장 익숙한 공간은 술을 마시다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 모든 이별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자신의 모습, 잊으려고 애써도 자꾸만 등장하는 옛사람들로 엉킨 꿈일지 모른다. 담담한 얼굴로 '가만한 지옥'에서 사는 일상을 들려주는 작가, 혼자임을 견딜 수 없지만 동시에 너무나 혼자 있음에 안도하는 사람, 우울과 비관으로 성실한 생활을 이어 가는 아이러니, 목적을 모른 채 털레털레 내딛는 걸음과 온 힘을 다해 웃는 동시에 비어져 나오는 울음을 참는 표정 등. 김남숙이 에세이로 보여 주는 그의 얼굴은 그의 소설과 닮았다. 그래서 이 책은 김남숙의 소설에 대한 세계관, 미래의 김남숙이 쓸 소설에 대한 작고 단순한 예언, 에세이처럼 빚어진 또 다른 소설로 보인다.
책의 초반부에서 김남숙은 "꽤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쓰고 싶지 않은 상태, 쓰지 못하는 상태를 지날 때의 '김남숙'이 적은 독서 리스트는 역설적으로 그가 쓰고자 했던 것, 여전히 쓰고자 하는 것을 알려 준다. 작가는 또 자신을 여러 권의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을 오래 들고 다니며 거듭 다시 읽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에세이에는 그런 작가가 몇 번이고 펼쳤을 몇 권의 책에 대한 감상도 담겨 있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살인 창녀들'에 실린 소설 '랄로 쿠라의 원형'을 읽고 "나는 소설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사소하게 혹은 시시하게 복수를 하는 편이었다면 볼라뇨는 반대였다"고 말한다. 서보 머그더의 소설 '도어'를 "정말 잔인한 배반에 관한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또한 "분명 칼로 찌른 사람과 칼에 찔린 사람은 서로 사랑했던 사이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모든 감상은 소설가 김남숙이 작가로서 말하는 자신의 쓰기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쓰기, 혹은 쓰지 못할 것을 알기에 더욱 쓰기를 사랑한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작가의 말에서 김남숙은 "늘 소설이 나에게 가장 단순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뒤돌아보면 오히려 나에게 가장 복잡한 숙제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늘 싫다와 좋다를 번복하며 말해 왔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소설을 전보다 조금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이다지도 별로인 내가 그래도 나를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소설이었다는 것을, 나는 잠깐 잊고 있었던 것 같다"고 고백한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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