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한가

  •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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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16  |  수정 2023-02-16 06:53  |  발행일 2023-02-16 제22면
곽 전 의원 50억 무죄 선고

800원 횡령 버스기사 유죄

'사회적 신분' 따라 量刑 편차

몽테스키외 "쓸모없는 법…"

비상식적 판결 법치 형해화

[박규완 칼럼]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한가
박규완 (논설위원)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대한민국 헌법 11조 1항이다. 한데 이 조문을 무력화하는 역대급 판결이 나왔다. '곽상도 50억원 무죄' 선고가 그것이다. '사회적 신분'에 따라 법리 적용과 양형(量刑)의 편차가 크다는 불편한 진실도 확인했다. 곽상도 전 의원이 검사 출신·전직 국회의원·여권 인사가 아니었더라도 동일한 판결이 내려졌을까.

김건희 여사에 대한 검찰의 방관 또는 선택적 예우 역시 '사회적 신분'의 파워 아닌가 싶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에 연루된 김 여사는 지난해 1월 검찰의 소환에 불응했다. 3·9 대선 후 출석하겠다면서. 하지만 대선 후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검찰은 뭉개기로 일관했다. 하기야 영부인에게 감히 소환장을 날릴 간 큰 검사가 있었겠나.

'50억원 무죄'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부정 일색이다. "어이없는 수사이고 판결"(홍준표 대구시장), "상속세까지 면탈해 준 꼴"(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 "사회정의에 반하는 판결"(조선일보), "뇌물로 보는 게 일반 국민의 눈높이"(법조계), "합법적 뇌물 받는 법 창조"(소셜 미디어).

생뚱맞은 판결은 검찰의 나사 빠진 수사와 부실한 공소장, 법원의 편향된 판단이 어우러진 결과다. '곽 전 의원이 직접 돈을 받았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도 없다.'(판결문) 문장은 왜 이래 배배 꼬였는지. 정영학 녹취록은 사뭇 다르다. "병채 아버지가 돈을 달라고 그래. 병채를 통해서."(김만배) 병채씨는 곽 전 의원의 아들이다.

재판부는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법리를 적용했고 부자 관계를 너무 좁게 해석했다. 검찰의 징역 15년, 벌금 50억원 구형에 비추더라도 이례적 양형이다. 고작 800원 착복한 버스 기사의 해고를 정당하다고 판결했던 법원 아니었나. 딸 조민이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받은 600만원의 장학금을 뇌물로 판단해 조국에게 유죄를 선고한 그 잣대는 걷어치웠나.

'800원 횡령·600만원 장학금 유죄, 50억원 퇴직금 무죄.' 이게 공정과 상식에 맞나. 2019년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국감 장면을 소환한다. 곽상도 당시 국민의힘 의원이 전호환 부산대 총장을 추궁하는 대목이다. "이건 부모를 보고 부모 때문에 장학금이 나간 거다. 총장님 동의하시느냐?"

검찰이 압수수색과 계좌 추적을 제대로 했는지도 의문이다. 조국 가족 수사 때 한 달 반 동안 70여 곳, 백현동 의혹 수사에선 일거에 40곳을 털었으면서. 현란한 '압색 신공'도 '사회적 신분'이나 진영 논리에 따라 선택적으로 시전하나. 공소장에서 왜 알선의 대가성을 증명하지 못했나. 왜 제3자 뇌물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나. 성남FC 광고까지 제3자 뇌물죄로 엮으려 했던 오지랖은 어디 갔나.

'법의 정신' 저자 몽테스키외는 "쓸모없는 법은 필요한 법을 무력하게 만든다"고 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비상식적 판결의 득세는 상식적 판결을 왜곡한다. 당연히 법치주의는 형해화된다.

최상위법 헌법 앞쪽에 '법 앞의 평등'을 담은 건 우리가 지켜야 할 최상위 가치라는 의미다. 그런데 어쩌나. 현실은 영 딴판으로 전개되고 있으니. MBC가 만든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 제작진의 첫 마디는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였다. 한데 '법은 차별한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헌법 11조가 부끄러워지는 시간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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