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과 치료…사고 후 고통 재생 'PTSD' 조기치료로 반복 끊어내야

  •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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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21 07:23  |  수정 2023-02-21 07:23  |  발행일 2023-02-21 제16면
심리적·육체적 재난 겪은 뒤 공포감 반복…악몽·공황발작 등 나타나
'정서적 안정화 기법'이 치료의 첫 단계…급성기엔 약물 치료가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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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두운 미로를 헤매다 숨이 막혀 잠에서 깬 A씨. 얼마 전 불이 난 건물에서 가까스로 구조된 후 자주 악몽을 꾸고 있다. 사고 이후 높은 건물이나 복잡한 장소는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며 매번 비상구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알람이나 사이렌 소리만 들려도 깜짝 놀라고 팔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다. 그는 '그날 나가지 말걸'이란 생각과 함께 점차 외출하지 않고 사람들도 만나지 않게 됐다. 최근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피해 현장이 연일 방송가에서 보도됐다. 건물 잔해 사이에서 극적으로 구출되는 다행스러운 장면뿐 아니라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손을 뻗는 모습, 결국 싸늘한 주검이 돼 이송되는 장면까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현장이 실시간으로 나왔다. 이 같은 재난 현장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현장 사진·영상을 접하는 우리에게도 발생할 수 있는 불청객이 있다. 바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다.

◆사회생활에 부정적 영향 미치는 'PTSD'

PTSD는 사람이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이다. 즉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실제적 죽음이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위협, 심각한 상해, 정신적 또는 신체적 안녕에 위협을 주는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했을 때 생길 수 있다. 사건에 공포를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낀다. PTSD를 겪는 사람들은 사건이 종료돼도 마치 끝나지 않은 것처럼 느끼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PTSD에서 초반에 더 두드러지고 잘 알려진 증상은 재경험을 통한 플래시백, 공황 발작, 악몽 등이다. 그러나 외상적 경험 이후의 갖가지 환경으로 인해서 PTSD의 증상이 악화할 수 있다.

◆소방공무원 100명 중 7명,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소방공무원 중 7%는 PTSD·우울증·수면장애 고위험군, 5.4%는 자살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청이 지난해 '소방보건 E' 시스템을 통해 전국 소방공무원 대상 마음건강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같은 통계가 나왔다.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PTSD, 우울증, 수면장애 등에 대한 고위험군 비율이 2~7%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특히 자살 고위험군의 경우 2천906명(5.4%)이 해당했다. 전년 대비(2천390명, 4.4%) 1%포인트 증가했다. 소방청은 이 같은 결과의 가장 큰 원인으로 소방대원의 정신적·육체적 탈진 현상을 꼽았다. 코로나19 대응 최일선에서 업무를 수행하느라 업무 과중이 발생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충격적인 외상 사건 빈도 증가도 원인으로 거론됐다. 소방청은 이번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 1천219명 모두에 대해서도 신속하게 긴급심리지원을 실시하고, 이 중 식별된 고위험군에 대해서는 병원 연계치료와 집중 관리를 하고 있다.

◆사회적 등 PTSD 원인

충격적인 외상 사건 자체가 일차적인 원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여러 신경전달물질 체계와 불안·공포와 관련된 뇌 부위의 이상이 PTSD 발병과 관련돼 있다. 노르아드레날린, 도파민, 내재성 오피오이드 등의 신경전달물질이나 편도체,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피질축 등의 다양한 뇌 부위 이상이 함께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 자율신경계의 과도한 반응 역시 중요한 발병 요인으로 보고된다. 그러나 같은 외상 사건을 경험한 모든 사람에게서 PTSD가 발병하지는 않는다. 이를 고려하면 심리적, 생물학적, 사회적 요인도 PTSD 발병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아동기 외상 경험, 가족의 정서적 지원 부족, 사회적 지지 부족, 정신과 질환에 취약한 유전적 특성, 최근에 경험한 생활 변화, 과도한 알코올 섭취 등의 요인이다.

◆조기 치료가 관건

외상 사건을 경험한 후에 일주일이 지나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거나 오히려 악화된다면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진단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심층 면담을 통해 이뤄진다. 아직 한 가지의 뇌 MRI 검사나 혈액검사, 설문검사 등으로 PTSD를 확진하지 못한다. 때로는 외상적 사건으로 유발된 뇌 손상과 같은 신체 질환이 PTSD와 유사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어 신체 질환을 구별하기 위해 혈액검사, 뇌 영상 검사 등을 하기도 한다.

치료 첫 단계는 환자의 정서적 조절과 안정을 돕는 '안정화 기법'을 시행하는 것이다. 치료자는 우선 외상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을 설명하고, 환자의 반응이 정상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임을 강조하고 치료 과정에 대해 설명한다. 증상을 유발하는 요인을 찾고 요인별로 대처하는 방법을 환자와 함께 찾아 나간다. 시각적, 청각적, 신체적 감각을 이용해 외상 경험에 대한 기억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착지연습, 상징적인 마음의 이미지를 이용해 불편한 생각, 감정, 감각을 조절하는 봉인연습 등을 같이 한다. 일부 환자는 안정화를 잘하는 것만으로도 회복된다.

안정화가 잘 이뤄진 다음에도 증상이 지속한다면 노출치료, 인지처리치료를 포함한 인지행동치료나 정신역동적치료,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 같은 치료를 시행한다.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은 외상과 관련한 부정적 감정, 기억, 인지 등을 떠올린 후 치료자 지시에 따라 연속적인 빠른 안구운동을 수행하면서 외상 기억과 감정이 최소화될 때까지 진행하는 방식이다.

약물치료도 도움된다. 대개 증상이 심한 급성기에는 약물치료를 주로 시행해 재경험이나 과각성 증상을 조절한다. 주로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계열 약물이 처방되는데 이는 PTSD 고유 증상과 불안, 공포, 충동성 경향 등을 조절해준다. 또 기분안정제, 항불안제 등도 처방된다. 증상이 매우 심각한 환자나 자살이나 폭력의 가능성이 큰 환자는 입원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영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석호 교수는 "사실 PTSD 치료는 어려운 축에 속한다"며 "약물치료만으로 한계가 있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심리적인 치료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PTSD 극복 방법에 대해 "트라우마를 입었던 환경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사실 그러기가 쉽지 않다"며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서 많은 격려와 응원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 교수는 "약물치료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거나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강승규기자 ka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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