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산티아고 순례길

  • 임진형 음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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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23  |  수정 2023-02-23 07:46  |  발행일 2023-02-23 제16면

[문화산책] 산티아고 순례길
임진형 (음악학 박사)

30대 중반이었다. 캐나다 맥길대학에서 졸업 연주를 마치고 혼자 10.5㎏의 배낭을 메고 스페인을 횡단하는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에 도전했다. '나도 이제 순례자가 되는구나.' 순례자 증명서를 받으면서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그리고 계획대로 잘 걸어보겠다고 마음으로 몇 번이고 다짐했다. 하지만 첫날부터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고, 계획의 반에도 못 미치는 고작 8.7㎞를 걷는 것으로 첫날의 여정을 마쳤다. 알베르게에 도착했을 때, 앞서간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내 가방이 너무 무겁다고 한마디씩 거든다. 가방 안에는 드라이기, 미니노트북, 화장품 케이스 등 걷기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잡다한 것이 많았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최소한의 옷가지, 침낭, 비누만을 남긴 채, 다른 짐들을 몬트리올로 보내고,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2㎏ 정도가 줄어들었을 뿐인데, 하늘을 날 것처럼 가볍고 행복했다. 배낭 하나에 이렇게도 무거움을 느끼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무게를 생각하니 순간 현기증이 났다. 내 삶의 무게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또 불평만 늘어놓으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평소 깔끔을 떨던 나는 여행지에서 사라졌다. 알베르게에 도착해 순례자들의 지독한 발 냄새에도 적응이 되고, 브라스 앙상블처럼 크게 울리는 코 고는 소리도 자장가처럼 들렸다.

'여행의 기술' 작가인 알랭 드 보통은 말한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이다.' 그렇다. 여행은 기존의 생각과 관념들을 내려놓고 이국적인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면서 참된 나를 찾고 그런 나에게로 회귀하는 과정이다. 저녁마다 발가락 물집을 터트리고 소독약을 바르던 그 길. 카미노(Camino)는 스페인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길에는 이동과 사고의 과정으로서 고통이나 상처, 불안이 따르기도 하지만,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치유를 받고 생명을 얻기도 한다.

내가 걷고 있는 음악인문학자 길에서의 '인문'이라 함은 하늘과 땅의 문으로 가는 길이다. 소를 찾아 떠난 길에서 결국 본래면목의 자신으로서 소를 발견하는 '심우도(尋牛圖)'의 이야기처럼, 계명대, 창원대, 두류도서관 그리고 대구KBS 클래식FM에서 음악인문학 강의를 하며 나의 길을 찾고 배움의 성찰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그동안 함께한 독자 여러분에게도 빛나고 아름다운 삶의 여정이 펼쳐졌으면 한다.

임진형 (음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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