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산책] 오에 겐자부로 '만엔 원년의 풋볼'

  • 소명선 교수
  • |
  • 입력 2023-03-17 08:41  |  수정 2023-10-11 13:28  |  발행일 2023-03-17 제21면
근친상간…조선인 혐오…패전 후 일본이라는 이름의 지옥

1272381123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1935~)는 1994년 일본문학사상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열살이 되던 해에 패전을 맞이한 오에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접한 민주주의 교육을 통해 '주권재민'과 '전쟁 포기'의 약속이 자신의 인격을 형성하는 기본 모럴이 되었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전후 민주주의자'로 규정하고 평화헌법에 역행하는 움직임에 비판적인 자세를 취해온 오에인 만큼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일왕이 수여하는 문화훈장과 공로상을 거부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이러한 오에의 정치적 자세는 노년기에 접어든 현재까지도 헌법 개정을 저지하기 위한 모임, 핵무기와 핵 폐기, 반원자력발전소 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도쿄대 불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부터 작품활동을 해온 오에는 '만년양식집(晩年樣式集)'(2013)을 마지막으로 현재 소설 집필은 중단한한 상태다. 초기에는 점령된 일본의 상황과 전후 청년들의 내면을 보이지 않는 벽에 감금된 상태로 보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없는 무기력한 청년상을 주로 그려냈다. 중증장애를 갖고 태어난 장남과 피폭지 히로시마와 미군기지 섬 오키나와 취재는 오에 문학에 커다란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반세기가 넘는 동안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고, 그의 문학의 근간에는 국가주의와 천황제 문제, 핵 문제, 히로시마와 오키나와, 장남과의 공생문제, 미래사회의 환경문제 등이 자리하고 있다. 장남의 출생 이후 개인적인 일상에 대한 서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지만, 그의 작품은 언제나 현실적인 문제와 결부되어 있고, 현대사회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문제로 연결되어 인간 회복과 인류구원의 비전을 제시한다.


패전 이후 혼란한 日 근현대사 함축…폭력으로 점철된 역사 속 처절한 갈등
미쓰사부로·다카시 형제 중심으로 다양한 지옥 그리며 구원의 가능성 질문



'만엔 원년의 풋볼(万延元年のフットボ一ル)'(1967)은 노벨문학상 수상 이유에서 대표작으로 꼽은 작품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시코쿠의 숲속 골짜기마을'은 오에의 고향이 모델이 되고 있고, 단절과 고립의 공간이었던 초기작과 달리 '만엔 원년의 풋볼'에서는 100년간의 일본 근현대사를 담은 역사적 공간을 구축하고 있다. 이후 독특한 지형적 구조와 함께 일왕 중심의 신화체계를 상대화시키는 독자적인 신화공간으로 형상화되는 등 윌리엄 포크너의 가상의 공간 요크나파토파 카운티와 같이 오에문학의 주요 토포스로 기능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삶을 지향하며 고향으로 돌아온 네도코로 미쓰사부로와 다카시 형제의 이야기는 만엔 원년의 농민봉기를 주도한 증조부 동생의 봉기 후의 삶을 둘러싸고 그 진상을 밝히는 형태로 전개된다. 다카시는 증조부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봉기의 주동자였던 동생을 살해한 것으로, 미쓰사부로는 증조부가 그의 동생이 고치현으로 도망치도록 도와주었고, 도쿄로 간 증조부의 동생은 개명하여 메이지 신정부의 고관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두 사람의 기억은 둘째 형 S의 죽음에 관해서도 어긋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큰형은 자발적으로 입대해 전사했고, 예과연습생에 지원한 S형은 전쟁이 끝난 후 귀환하지만, 패전 직후의 혼란 속에 발생한 조선인부락 습격 사건에 휘말려 죽고 만다. 다카시는 이런 S형에 대해 습격을 주도하다가 죽은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고, 미쓰사부로는 조선인부락 습격에 동참한 무법자들이 조선인을 죽이자,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체구도 작고 가장 약한 S형이 희생양이 된 것이라 믿고 있다.

이와 같이 상반되는 기억을 둘러싸고 전개된 두 사람의 논쟁 과정을 통해 소환되는 것은 네도코로 집안의 100년의 역사 속에 죽어간 자들, 즉 100년 전 농민봉기의 지도자였던 증조부 형제, 일본제국의 아시아 침탈기에 만주에서 정체 모를 일을 하다가 죽은 아버지, 태평양전쟁에 참전해 필리핀에서 전사한 맏형, 패전 직후 조선인부락을 습격하다가 죽은 S형, 자살한 여동생, 광기에 사로잡혀 죽은 어머니다. 그리고 다카시가 증조부의 동생과 S형에 자기동일화함으로써 증조부의 동생-S형-다카시로 연결되는 네도코로 집안의 계보는 1860년(만엔 원년의 농민 봉기)-1945년(태평양전쟁)-1960년(60년 안보투쟁)이라는 역사적 분기점을 새기고 있다.

이 100년의 역사는 '폭력적인 것'으로 점철되어 있다. 역사 속에 죽어간 자들은 물론 안보조약개정 반대투쟁 현장에서 진압하는 경관대가 아닌 시위자들에게 폭력을 휘둘렀으며, 귀향한 후에는 조선인이 경영하는 슈퍼마켓 약탈을 주도하고 약탈의 책임을 지듯 자살해 버린 다카시의 삶 또한 폭력 그 자체이다. 그리고 초등학생 무리가 던진 돌멩이에 맞아 오른쪽 눈의 시력을 상실한 미쓰사부로, 머리에 혹을 달고 태어나 절개수술을 받아야 했던 신생아, 그런 아기를 출산한 충격으로 고통받는 나쓰코, 안보투쟁 현장에서 머리를 다친 후 경증의 정신이상을 앓다가 결국 기괴한 형태의 자살을 해버린 친구와 같이 비폭력·반폭력적인 인간도 "폭력적인 것"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폭력을 행사하는 입장이건 당하는 입장이건 저마다 폭력으로 인해 "내부의 지옥을 견디고 있는 인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오에는 미쓰사부로와 다카시 형제에게 각각 반폭력적이고 비행동적이며 방관자적인 인물(사회에 용인되는 인물)과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행동형 인간(사회에서 배제되는 인물)이라는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 이들이 골짜기마을에서 갈등하고 충돌하는 이야기는 일반적인 인간사회의 양상을 노정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상반되는 두 성향을 함께 지닌 한 인간의 내면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카시의 경우 폭력적인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욕구와 자기처벌의 욕구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한다. 그가 폭력적인 인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여동생과의 근친상간과 그런 여동생을 자살로 몰고 간 죄의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죄, 즉 숨겨왔던 '진실'을 폭로한 후 다카시가 선택한 길은 가장 폭력적인 방법으로 스스로를 처벌하는 것이었다.

증조부 동생의 봉기 후의 삶에 대한 전모가 드러나는 것은 네도코로 집안의 100년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물을 해체하는 과정에서다. 증조부의 동생은 봉기 후 동지들을 저버리고 혼자 도망친 것이 아니라 곳간 지하에서 유폐생활을 해왔고, 일생 전향하지 않고 메이지 초기의 두 번째 폭동을 성공시킨 후에도 20년 넘는 유폐생활 끝에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다카시는 증조부의 동생이 에도막부의 과도한 세금과 부역에 저항하여 일으킨 농민봉기를 지도한 것처럼, 마을의 경제적 지배자인 '슈퍼마켓 천황'에 맞서 '상상력의 폭동'을 일으켰고, 슈퍼마켓 약탈에 대한 책임을 지듯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러한 다카시에 대해 미쓰사부로는 '진실'을 외치고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관철한 다카시는 자신의 '지옥'을 극복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증조부의 동생과 다카시에 대한 자신의 '판결'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모든 사태를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관조하기만 해왔던 자신이 이제 '재심'을 받을 차례라 생각한다. '재심'의 판결은 네도코로 집안의 살아남은 혈족으로서 미쓰사부로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소설이 발표된 1967년은 일본의 원호가 메이지로 개원한 지 100년을 맞이하는 1968년, 즉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발적인 근대화에 성공한 메이지유신을 기념하기 위한 '메이지 백년제' 준비로 술렁이던 시기다. 과거의 찬란했던 제국의 영광에 열광하던 1967년, 오에는 네도코로 혈족의 100년의 역사를 통해 독자의 시선을 부(負)의 역사로 향하게 하고, 그러한 역사를 살아가는 현대 일본인의 구원의 가능성을 독자 스스로 모색하도록 하고 있다. 현대 일본인의 구원의 가능성은 그들이 폭력으로 점철된 그들의 근대사와 어떤 식으로 마주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소명선 교수 (제주대 일어일문학과)
공동기획: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2023022701000876400036122
소명선 교수 (제주대 일어일문학과)

◆소명선 교수는?

부산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일본 규슈대학 대학원에서 오에 겐자부로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일본근현대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를 비롯한 일본현대문학을 연구의 중심축으로 하면서 오키나와문학과 재일조선인문학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재일조선인 관련 외교문서와 일본문학 속의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오에 겐자부로론: '신화형성'의 문학세계와 역사인식', 역서로는 '일본 근현대 여성문학선집 5 노가미 야에코', 공저로는 '해방 이후 재일한인 외교문서 해제집' '재일조선인 마이너리티 미디어 해제 및 기사명 색인' '재일조선인 미디어와 전후 문화담론'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1950년대의 일본열도가 본 한국전쟁' '오에 겐자부로의 '치료탑'과 '치료탑 혹성론' '현월 문학의 토포스에 관한 연구' '사키야마 다미론-동아시아 여성서사를 연결하는 문학적 상상력' '오키나와문학 속의 일본군 위안부 표상에 관해' 등이 있다.

기자 이미지

소명선 교수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