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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 시인의 네번째 시집 '외등은 외로워서 환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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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 시인 |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삶 도처에 널린 죽음의 상징과 의미를 처연하면서도 아름답게 재해석한다. 죽음과 삶이 어떻게 공존하는지도 그려낸다.
"내 손바닥에 주검이 오셨다/국밥집에서 주워 왔다는/반으로 타개 놓은 소머리 해골/우뚝한 외뿔이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보이지만/움푹 들어간 눈자위/지금, 죽음은 죽음에 몰입해 있다/다정다감하지 않지만/이래라저래라 훈수 두지 않는 해골이 나는 좋다"('죽은 소의 뿔을 만지다' 부분)
시인은 또 팬데믹이 불러온 미증유의 시대를 예리한 시각으로 보여준다. 특히 "꿈에 마스크를 쓴 아이를 낳았다 하면 믿겠니"('오랜만에 걸려 온 전화')라며 코로나가 불러온 인류의 초상을 섬뜩하게 그려낸다. 그러면서 팬데믹이 가져온 병과 죽음의 일상화를 상기하며 '쓰는 일'의 사명을 환기시킨다.
"서하 시인 사망, 코로나로 조문사절//나의 유작을 중얼거려 봅니다/이승을 벗듯이 옷가지 벗고/뚜껑 없는 관곽으로 들어가 누우니/죽음이 빙 둘러쌉니다/(중략)/죽음도 숨을 쉬는지/추깃물이 뽀글거립니다//혼자 쓰는 죽음이 점점 빼곡해집니다"('부고를 받고' 부분)
애잔한 눈물과 천진한 웃음이 뒤범벅 된 옛이야기도 흥미롭게 풀어낸다. 시인은 수학여행 갈 형편이 안돼 어른들의 심부름으로 하루를 보내던 어린 날을 떠올리며 "내 머리칼을 잡아당기는 동생을 엉덩이 받치고 있던 손으로 한 대 쥐어박았더니 버려진 오후가 앙앙 울었"('Cut-in')던 옛 추억을 소환한다. 또 "소여물 써는 작두를 옮긴 한 모티"에서 태어나 "본적도, 현주소도 다 모티"('이름·1')로 살아왔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드러낸다. 딸이라는 이유로 구석진 삶을 강요당했던 아픈 이야기이지만 위트 있게 그려낸 시인의 시어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위트는 시집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수학 선생님을 짝사랑하던 시적 화자가, 불현듯 찾아온 실연에 낙담한 심정을 경상도 사투리로 맛깔나게 구현한 시는 웃음 짓게 한다.
"그런 그가 내 담임 샘과 갤혼을 한다는 소무이 돌아댕깄다(중략)부글거리는 내 속을 확 디비시 놓은 담임 샘이 엄청시리 미깔시럽었다 한 코 한 코 뜰 때마다 코바늘로 콕콕 찌리고 싶었다 안 그라머 미쳐 버릴 것 같았다"('눈 내리는 날' 부분)
장옥관 시인은 '추천사'에서 "서하 시인의 시는 개구쟁이 딱지 뒤집듯이 말의 의미를 뒤집는 시원시원한 솜씨가 있다. 해학과 풍자의 겨드랑이에 슬쩍 끼워 넣는 아련하고 아릿한 슬픔의 기미도 얼핏 보인다"고 평했다.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서 시인은 1999년 '시안'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해 시집으로 '아주 작은 아침' '저 환한 어둠' '먼 곳부터 그리워지는 안부처럼'이 있다. 제33회 대구문학상, 제1회 이윤수 문학상을 수상했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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