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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경제활동과 행정 권력에 쉽게 접근할 목적으로 모여 살면서 형성된 도시는 끊임없이 내외부의 위협을 극복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고대 도시인 로마의 물 문제, 파리의 하수 문제, 바르셀로나의 군사 문제에서부터 근대도시의 산업노동력 문제, 현대도시의 시민 권력 문제에 이르기까지 도시는 항상 새로운 문제와 도전에 직면하여 왔다. 그때마다 인간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권력분배의 새로운 사회계약을 통해 주어진 문제를 극복하여 왔다. 도시 극복의 역사는 19세기 산업도시, 20세기 서비스도시, 21세기 플랫폼도시로 패러다임 변화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모바일과 디지털 기술을 앞세우며 호기롭게 시작한 21세기 플랫폼도시는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위기를 맞이했다. 특히 생물 다양성 파괴와 지구온난화의 원인으로 도시 과밀화가 주목되면서 현대도시는 전염병에 대한 위기대응, 탄소중립 구현 같은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책임을 요구받고 있다. 개별 도시들은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이동수단·공공자산·개인 공간 공유, 인공지능·로봇과 협업하는 도시경제 구현, 디지털 시민 권력 강화와 같은 새로운 방식의 도시를 실험하고 있다.
◆21세기 도시의 시민 권력
근대도시의 등장은 성직자(제1계급), 귀족(제2계급), 도시민(제3계급)으로 엄격하게 구분된 계급의 위계도 바꾸었다. 길드를 통해 상업 자본을 가진 시민 권력이 강화되었다. 길드는 기사단과 다름없는 규율을 가지고 있으며, 국왕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사업을 독점하고 품질 검사, 수출입 단속, 동업자 간 중재나 재판에 이르는 과정을 장악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은 크고 작은 규모에 상관없이 중세 길드조직의 변형이다.
21세기 플랫폼 도시는 근대도시에서 길드라는 집단 중심의 권력을 세분화해 시민 한 명, 한 명에게 권력을 위임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인터넷 기반의 디지털 네트워크는 엘리트 독점의 산업사회 도시 권력 구조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디지털 정보가 무수히 쏟아져 나오면서 정보와 네트워크의 독점력이 약화됐다.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에 일반 시민은 정보 부족으로 곤란을 겪었지만, 이제는 넘쳐나는 정보로 가짜 정보를 필터링하는 문제가 더 커졌다. 정보생산자도 정부나 전문가 집단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시민이 정보의 소비자이자 생산자 역할을 하고 있다. 개인이 소셜 미디어 공간에 올린 정보는 TV나 신문보다도 훨씬 빠르고 넓게 퍼져 나간다.
웹 공간에서 개인은 더 이상 고립되지 않는다.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시민은 촘촘히 그리고 폭넓게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디지털 기반 시민력은 행정 의사결정과 도시문제 해결 과정에 깊이 참여하면서 도시의 공공 자산은 물론 시민 자산을 공유하는 순환경제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웹3.0 같은 디지털 기술은 도시의 행정 권력을 분산하고 모든 시민에게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촉진하는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웹3.0이 만드는 분산 권력
웹3.0은 컴퓨터가 시맨틱 웹 기술을 이용하여 웹페이지의 내용을 이해하고 개인 맞춤형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인공지능 웹을 말한다. 시맨틱 웹이란 인터넷상에 있는 수많은 웹페이지마다 의미를 부여해(메타데이터화) 기존 잡다한 데이터 집합인 웹페이지를 '의미'와 '관련성'을 가진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기술이다.
정보통신 시장은 대략 10년을 주기로 커다란 패러다임의 진화를 겪어 왔다. 이보다 5년 앞서 패러다임을 주도할 선행기술이 시장에 등장한다. 개인에게 지능화된 맞춤형 정보를 전달하는 웹3.0시대(2015~)는 기본적으로 웹2.0시대(2005~2020)의 핵심인 읽기와 쓰기를 넘어 '소유'의 개념이 더해진 것이다. 세계 곳곳에 흩어진 네트워크 참여자들의 컴퓨터 자원을 활용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자료를 분산 저장하고, 이더리움 같은 가상화폐에 내재된 스마트 콘트랙트 기술로 개인이 데이터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다. 웹3.0은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초개인화된 인터넷 환경에 가깝다. 웹3.0은 개방형 커뮤니티가 주도하는 웹1.0과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웹 2.0의 장점을 결합하여 탈중앙화와 이용자 간 자율적인 상호작용 환경을 동시에 제공한다.
2020년을 전후해 알머닛, 에스테로이드 등 웹3.0 포털이 등장하였으며, 특히 올해 CES 2023은 향후 시장을 주도할 핵심 키워드로 지명하였다. 웹3.0은 현재 시장에 등장한 복잡한 기술들, 가령 메타버스·코인·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등을 일거에 수렴하는 용어이기에 시장에서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웹3.0 기술은 단순히 시장에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웹3.0은 기본적으로 탈중앙화된 민주화 플랫폼을 지향한다. 이는 인터넷 서비스를 플랫폼 기업이 아닌 커뮤니티 혹은 개인이 소유한다는 의미다. 행정과 도시관점에서 보면, 웹3.0에서 사용되는 DAO(분산자율조직) 기술은 탈중앙화를 통해 흩어져서 자율적으로 움직이면서 통합된 의사결정이 가능한 21세기형 디지털 거버넌스를 구현할 수 있다.
웹3.0을 구성하는 블록체인을 이용해 새로운 전자도시정부를 구현할 수 있다. 이는 시민 자율성을 강화하고, 디지털과 물리적 세계가 연동되어 '개인자산을 활용한 일인 공유경제'를 만들어 낸다. 웹3.0의 분산 관리기술은 노동단위를 작게 나누어 관리함으로써 작업공간과 주거, 교육, 놀이 공간의 변화를 만들고 도시 설계 방향을 바꾼다. 나아가 도시는 암호화 기반의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도시문제와 행정 거버넌스에 시민 참여를 확대하고, 개인의 삶과 공동체를 질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
◆새로 쓰는 디지털 시민 권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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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대 (대구TP 기획평가팀장) |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어김없이 강력한 저항도 뒤따른다. 19세기 초반 산업혁명으로 급변하는 사회에 저항의 표시로 섬유 기계를 파괴한 '러다이트 운동(Luddite)'이나, 20세기 문명사회를 경멸하며 18년 동안 대학교수와 항공사 임원에게 소포 폭발물을 보내 29명을 사상한 하버드 수학천재 테드 카진스키(일명 유나바머·Unabomber)나, 21세기 디지털 문명사회에서 컴퓨터 시스템을 뚫고 파괴하는 크래커(Cracker)의 등장은 모두 기술에 대한 저항이다. 하지만 이러한 저항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기술 발전을 가속한다.
웹 3.0은 오랫동안 도시를 지배한 생산성 중심의 가치를 새롭게 전환하는, 가령 제레미 리프킨이 제시한 회복력 시대를 앞당기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시민 한 명, 한 명에게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력의 소유권과 책임성을 강화하면서 생산성 중심에서 간과했던 인간 중심성을 회복한다면 더없이 좋겠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선택은 책임이 따른다. 성숙한 시민의 올바른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구TP 기획평가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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