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토크] 낭만가객 최백호 수필가로 컴백…이번엔 "인생에 대하여" 들려드립니다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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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24 08:42  |  수정 2023-03-24 16:56  |  발행일 2023-03-24 제39면

최백호
낭만가객 최백호가 첫 에세이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를 발간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인기에 재판 찍어
에세이 38편에 그림작품도 함께 수록
의문사하신 아버지·은둔생활 사연 등
민낯으로 담담히 풀어낸 고단한 여정

최근 정승환 등 후배가수와 컬래버 무대
31일 부산일보 대강당서 북콘서트 예정
"매일 감동과 변화있는 삶 향해 달릴 것"


'노래하는 철학자' 최백호가 첫 산문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마음의 숲)를 냈다. 책은 출간된 지 한 달여 만에 초판 5천부가 모두 팔리고, 재판인쇄에 들어갔다. 책을 읽지 않는 요즘 시절에 기성문인들도 좀처럼 얻기 어려운 성적이다.

읊조리듯 나지막이 써내려 간 38편의 에세이에는 민낯의 가수 최백호가 오롯이 들어있다. 어렵고 힘들었던 지난한 여정 속에서도 부끄럽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한 인간의 처절한 자기 고백이 담겨 있다. 또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배워 몇 차례 전시회까지 개최한 그의 간결하고 정돈된 화풍의 작품도 함께 만날 수 있다.

'백호(白虎)'라는 범상치 않은 이름이 주는 무게 때문이었을까. 1976년 활동을 시작해 올해로 가수활동 47년을 맞은 그는 가요계에서 남다른 인생여정을 걸어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이름은 소설가 김동리의 형인 철학자 범부 김정설이 지어 주었다.

국회의원이었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의문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마저 암으로 일찍 떠나보내면서 그의 젊은 날은 상처와 상실의 연속이었다. 어려운 형편으로 대학에 합격하고도 진학을 포기했으며, 결핵에 걸려 홀로 은둔생활을 하기도 했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영일만 친구' '낭만에 대하여' 등 그가 발표한 노래는 적잖은 상처와 내적 성찰이 빚은 명곡들이다. 그는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가수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타이거JK·지코·정승환 등과 협업했으며, '미스터 트롯' 멤버와 컬래버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권대웅 마음의 숲 출판사 대표는 "최백호 선생님과 이번 책 작업을 하면서 처음 만났다. 한 구절도 소홀히 하지 않고,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려 애쓰는 모습에서 '진정한 어른'이라는 생각을 놓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첫 산문집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나요.

"예전에 일간지에 칼럼을 몇 번 썼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편집자들이 제 글에 자꾸 손을 대더라구요. 제가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제 스타일이 있는데 그걸 자꾸 깨트리니 은근 성질이 나더라구요.(웃음) 노래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열심히 불렀는데 마음대로 편집하면 화가 나죠. 여하튼 그때 이후로 생각날 때마다 적어둔 글들이 있었어요. 칼럼이라기보다는 가사를 쓰기 위해서 쓴 글이라고 할까요? 그 글편들이 쌓여서 적지 않은 양이 되면서 책으로 만들었어요. 주제를 딱히 정하지는 않았고, 다양한 내용을 자유롭게 쓴 것 같아요."

▶책을 내면서 망설임도 있으셨다고 들었어요.

"지금까지 스무 개가 넘는 음반을 발표했어요. 그중에서 알려진 건 너덧 장밖에 없고, 나머지는 실패를 했어요. 솔직히 실패에 더 익숙해져 있는 거죠. 가수로서도 그렇지만 책을 펴내면서도 자신이 없었어요. 그동안 출판사 몇몇 곳에서 책을 만들자고 요청하셨는데 제가 거절했어요. 이번에는 출판사 대표님이 시인이신데 글에 손을 안 대고 작업할 수 있냐고 물었는데, 당연히 손대면 안되죠라고 답해줘서 흔쾌히 작업에 들어갔어요. 책이 널리 알려져서 많이 팔리면 좋겠지만 안되어도 할 수 없다는 담담한 마음으로 준비했던 것 같아요."

▶책에는 어떤 내용을 담았나요.

"특별한 내용은 없어요. 그냥 제 얘기예요. 제가 매일 살다가 느끼는 것들이라고 할까요. 어떤 이야기를 이렇게 받아들였고, 해결하고, 생각한다는 내용을 담담하게 적었어요. 책을 쓰면서 뭘 어떻게 하겠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의도 같은 건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

▶책이 나온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는데, 반응은 어떤가요.

"제가 음반을 내면서 이렇게 홍보활동을 많이 한 적이 없었어요. 뉴스에도 나오고, 여러 매체에서 정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진작 제 앨범을 이렇게 홍보했으면 히트곡이 더 많아졌을 텐데…."(웃음)

▶서울지역 북콘서트에서 꾸밈없이 소탈한 모습을 보여줘 큰 호응을 얻었다고 들었어요.

"북콘서트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그냥 제 방식으로 쉽게 진행했어요. 즉석에서 책을 펼치고, 나오는 대로 이야기를 나눴지요. 교사였던 어머니 덕분에 학교 사택에서 그림을 그리며 성장했던 이야기, 노래 가사와 그림을 그리는데 바다가 모티브가 된 이야기 등을 얘기했어요. '영일만 친구' '낭만에 대하여' 등 노래도 불렀죠. 공연 때와 다르게 이런저런 이야기가 곁들여지니까 받아들이는 분들의 반응도 조금 달라졌던 것 같아요. 그동안 저를 봐왔던 팬들이 최백호에게 이런 면도 있었구나 하면서 저에 대한 평가가 조금씩 달라짐을 느꼈어요. 오는 31일 오후 7시 부산일보 대강당에서 또 한차례 북콘서트를 가집니다"

▶매니저를 두지 않고 활동을 하시는데, 이유가 있나요.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하면서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시키니까 그게 싫어서 안 뒀어요. 아마도 매니저가 있었으면 가수로서 명성은 조금 더 얻었겠지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기에 아무런 아쉬움이 없어요. 제 누님이 계시는데 '너는 인제 죽어도 한이 없겠다, 너 하고 싶은 것 다 했으니까'라고 하셨어요. 사실 제가 하고 싶은 것이 몇 개는 더 있지만 정말 다한 것 같아요."

▶대구공연도 자주 하시나요.

"이상하게도 유독 대구와는 인연이 많지 않았어요. 제가 40년이 넘는 가수생활을 하면서 공연하러 가장 적게 내려간 대도시가 대구예요. 전국 투어를 하면 주요 도시의 공연장에서 공연이 열리는데, 유독 대구만은 피해갔던 것 같아요. 설사 공연이 성사되더라도 관객이 많지도 않았구요. 대구에 있는 친구들이 왜 공연하러 안 오냐고 이야기하면 저는 불러줘야 가지라고 답해요."(웃음)

▶책 군데군데 직접 그린 그림을 삽입하셨는데, 정식으로 배우셨나요.

"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미술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그림을 배울 수 있었죠. 그때 제 꿈은 화가가 되는 것이었어요. 지금도 매일 규칙적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노래 연습을 몇 시간 하고, 그 이후에는 그림을 그립니다. 최근엔 데생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 배우면서 그리고 있어요. 그런데 성격상 작품이 집에 쌓이면 불안해져요. 전시를 하든지, 남에게 주든지 해야 해요. 노래도 마찬가지예요. 노래도 많이 만들어져 쌓여 있으면 누굴 주든지, 내가 부르든지 해야 해요."

▶15년째 매일 라디오 방송도 하고 계신다구요.

"네. SBS 러브FM에서 매일 밤 10시5분부터 12시까지 음악방송을 하고 있어요. 노래도 듣고, 사람 사는 얘기도 나누고, 돈도 벌고 이렇게 좋은 기회가 있나 싶어요. 처음에 시작할 때는 길어야 1~2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15년이 훌쩍 넘었어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펑크를 내거나 방송에 늦은 적이 없어요. 정말이지 이렇게 좋은 시간을 매일매일 가질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좋아요."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매일 매일 열심히 생활하시는 듯해요.

"저는 어제와 똑같은 삶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죠. 매일 매일 변화와 감동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듣든지, 책을 읽든지, 그림을 그리든지 하는 모든 행위가 그런 연장 선상에 있지요. 정 안되면 집 앞에 나가서 길섶에 피어난 풀이나 꽃을 찾아서 감동을 얻으려고 해요."

▶지난 음악인생을 되돌아보면 몇 번의 변곡점이 있었죠.

"초기 무명시절에는 송창식 선배의 흉내내기였어요. 그의 '고래사냥'을 본따 '영일만친구'를 만들고, '입영전야'도 만들었죠. 그랬는데 그가 발표한 '사랑이야'를 듣고, 아 이건 도저히 '넘사벽'이라는 생각을 하고 포기했죠. 그 후로 저만의 음악을 하게 됐는데, 잘 안됐어요. 완전히 나락에 떨어졌다고 여길 즈음에 미국으로 가서 잠시 활동하고 돌아와서 내놓은 음악이 트로트였어요.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내 노래를 듣는 사람이 나와 똑같이 늙어 가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때 나온 노래가 '애비' '낭만에 대하여' 같은 곡이었죠. 그 뒤로도 월드뮤직에 도전장을 내기도 했고, 최근에는 아이유 등 몇몇 후배가수들과 작업을 했는데 나름 재미있어요"

▶앞으로 어떤 음악이 나올지도 기대가 되는군요.

"제 나이가 73세예요. 이제는 좀 시사적인 노래를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극단적인 반목과 정쟁으로 도무지 해법을 찾기 힘들어지고 있어요. 저처럼 음악 하는 사람이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고,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노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많은 책을 읽고, 사유를 하신 탓인지 생각의 깊이가 남다르신 듯하고, 스스로에게도 엄격하신 듯해요.

"저는 가수로서 후배들에게, 제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아요. 음악뿐 아니라 글로서도 마찬가지예요. 최백호라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은 못 되어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보통의 사람들이 열심히 살았다는 것과 달라요. 왜냐하면 저는 훨씬 밑에서부터 항상 스타트를 했으니까요. 먼 훗날 사람들이 최백호라는 사람이 참 열심히 살다가 갔다는 생각을 해주면 좋겠어요."

글·사진=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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