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사에는 '치수국평천하(治水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다. 물을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의미다. 2007년 영국 의료전문지 브리티시메디컬은 인류 최고 발명품으로 종이·전기·컴퓨터 등 희대의 발명품을 뒤로하고 '상하수도'를 1위로 꼽았다. 이처럼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물을 다루는 기술은 문명의 탄생과 번영을 이끌었다. 그리고 이 물 기술은 35년 전 낙동강 페놀 사태의 아픔을 겪은 대구에서 화려하게 꽃피우고 있다. 인공지능(AI)이나 로봇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물 기술은 시민의 삶과 도시를 서서히 바꿔놓고 있다.
서성수 <주>한국유체기술 대표가 자사의 유량계를 소개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승엽기자
◆유수율 끌어올리는 유량값 측정 기술
유수율은 수도(상수도)에서 공급되는 물이 실제 소비자에게 유입되는 비율을 뜻한다. 누수·손실을 줄여 물 공급의 효율과 비용을 개선하는 핵심 지표로 통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 선진국 도시에서는 이미 유수율 90%를 넘어 개선이 한계에 봉착한 게 현실이다. 유수율 90%를 넘는 곳에서도 유수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선진국형 유량측정 기술을 대구 물기업이 개발했다. 바로 한국유체기술<주>이다. 한국유체기술의 전자유량계는 기존 유량계의 한계로 지적된 저유량 및 초저유량(불감대 영역) 측정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해냈다. 특히, 관로 내 유속이 극히 낮거나(1초당 50㎝ 이하) 간헐적으로 흐르는 조건에서도 안정적인 유량 검출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상·하수관망, 누수 감시, 야간 최소유량(MNF) 분석 등 다양한 현장에 적용된다.
이 전자유량계는 △신호처리 전용 CPU 분리구조 △영점 안정화 기술 △노이즈 제거 기술 등 3가지 특화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기술을 통해 저유량부터 정격유량까지 넓은 계측 범위를 확보했고, 현장 조건 변화에 대한 대응성도 우수하다는 평가다. 한국유체기술 관계자는 "대구나 서울 등 유수율 95%를 넘어가는 곳에서는 우리 회사 제품이 아니면 유수율을 올릴 수 없다. 선진국이나 중동 등 극도로 물이 귀한 나라에서 각광받고 있다"고 밝혔다.
문상욱 <주>대한환경 대표가 자사의 수처리 솔루션을 설명하고 있다. 이승엽기자
◆재난 상황서 더 빛나는 정수 기술
정수 분야에서 독보적 기술력을 보유한 <주>대한환경도 주목할 만하다. 고정식 정수 설비부터 해수 담수화, 이동식 정수 시스템까지 폭넓은 기술 포트폴리오를 보유하며, 국내외 현장에서 다양한 수처리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대한환경의 기술 경쟁력은 원수 특성 분석에서부터 공정 설계, 시스템 제작, 현장 적용까지 아우르는 통합 역량에 있다. 역삼투(RO), 나노여과(NF), 전처리·후처리 기술을 상황에 맞게 조합해 안정적인 수질과 운용 효율을 동시에 확보하는 맞춤형 솔루션을 구현했다.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재난 대응용 이동식 수처리 및 해수담수화 장치를 미래 핵심 사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가뭄, 지진, 해상 사고 등 대형 재난 증가로 전력과 상수 인프라가 붕괴된 상황에서도 현장에서 즉시 물을 생산·공급할 수 있는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다.
대한환경의 재난 대응용 이동식 수처리 기술은 △배낭형 역삼투압 정수장치 △핸드캐리형 해수담수화 장치 △차량 이동형 해수담수화 장치 △컨테이너형 수처리·담수화 설비로 구성됐다. 배낭형 역삼투압 정수장치는 강물, 저수지, 빗물 등을 대상으로 다단계 여과 및 역삼투 기술을 적용해 세균, 바이러스, 중금속을 제거한다. 1인이 휴대 가능한 구조로 산악구조나 접근이 어려운 재난 현장에서 즉각적인 식수 확보가 가능하다. 핸드캐리형 해수담수화 장치는 해상 조난, 도서 지역, 연안 재난 상황을 고려한 소형 이동식 담수화 장비로, 바닷물을 직접 식수로 전환할 수 있다. 차량 이동형 해수담수화 장치는 차량에 탑재해 현장까지 이동 후 자체 발전기를 통해 즉시 운용할 수 있는 중형 이동식 시스템이다. 컨테이너형 이동식 수처리·담수화 장비는 재난 대응 기술의 핵심 거점 역할을 수행한다. 대규모 재난 현장이나 장기 대응 상황에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식수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이권기 <주>시노펙스멤브레인 대표가 자사의 분리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승엽기자
◆머리카락 수천분의 1도 걸러내는 수처리 기술
작년 7월 롯데케미칼의 대구사업장을 인수한 <주>시노펙스멤브레인은 수처리 분야에 잔뼈가 굵은 기업이다. 시노펙스멤브레인에서 생산하는 분리막의 공경은 사람 머리카락의 수천분의 1 수준인 0.03~0.1㎛로, 물속의 오염물질을 효과적으로 걸러낸다. 이를 이용해 각종 정수처리, 해수담수화전처리, 하폐수처리 및 재이용시설 등 다양한 수처리분야에 적용 가능하다. 정밀여과(MF), 한외여과(UF), 초순수용 분리막의 독자적인 국산화 기술력을 확보했으며, 분리막 기반의 순수·초순수 분야, 정수처리, 해수담수화, 하폐수처리 및 재이용 분야 수처리 시스템까지 원스톱 솔루션 체계를 구축했다.
이러한 제조기술과 엔지니어링 기술을 바탕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시장 확대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2021년 인도네시아 수방시의 찌아씀 정수장에 막여과시설을 준공했으며, 최근에는 파키스탄 라호르 지역의 정수시설 사업에 초기 투자를 단행하는 등 해외 수처리사업 확대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권기 시노펙스멤브레인 대표는 "우리나라에 수처리 필터를 제조하는 회사는 몇 있지만, 하수·정수·초순수까지 담당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며 "수처리 필터 솔루션을 통한 물 자원의 효율적인 관리로 물 부족 국가인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광석 <주>유솔 대표가 자사 브랜드 로고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승엽기자
◆스마트 모니터링으로 새는 물 잡는 기술
2010년 창업한 <주>유솔은 누수 관련 혁신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다. 유솔은 '스마트워터물관리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투자를 통해 스마트누수감시시스템, 스마트수압계, 스마트허브, 스마트검침단말기 등 누수 분야에서 독보적 기술력을 갖췄다. 2020년 환경부 '혁신형물기업' '그린뉴딜 유망기업 100'에 선정됐으며, 중소기업 동반성장 대통령 표창과 TTA 시험인증 대상을 수상한 물산업 IT전문 기업이다.
지능형 관망 운영시스템을 통해 물의 안정성 및 효율성을 확보했고, 수도미터기와 원격검침 기능을 일원화해 검침과 누수 정보를 빠르게 알 수 있도록 했다. 향후 상수도뿐만 아니라 하수도 영역까지 넓혀가고 있다. 오광석 유솔 대표는 "상수도관망 원격관리시스템 개발을 통한 독자적인 기술력을 지속 확보하고, 유솔만의 창의성을 더해 상수도 관리 선진화를 이끌겠다"고 했다.
서성수 국가물산업클러스터입주기업협의회 회장은 "대구는 페놀 사태의 역경을 새로운 기술과 시민의 노력으로 극복한 도시"라며 "기술개발, 기술검증, 국내사업화, 해외진출 등을 모두 지원하는 국가물산업클러스터가 대구에 입지함으로써 수도권 등에서 많은 물기업이 대구로 공장과 본사를 이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나라 물산업은 포화상태다. 물기업이 성장하려면 해외로 나가야 하는데,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안전한 제품 인증이 가장 중요하다"며 "글로벌 최고권위의 인증기관인 미국위생협회(NSF) 연구시험소 대구 유치를 위해 지역사회와 정치권이 힘을 모아달라"고 강조했다.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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