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산책] 테오도어 몸젠의 '로마사'

  • 최호근 고려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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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2 08:28  |  수정 2023-10-11 13:28  |  발행일 2023-05-12 제21면
"주사위는 던져졌다…" 역사의 명장면 예술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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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카이사르는 두 명의 작가를 통해 세상에 더 널리 알려졌다. 첫 번째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면, 두 번째는 독일의 역사가 테오도어 몸젠(1817∼1903)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줄리어스 시저'가 카이사르를 권력욕의 화신으로 그려냈던 것과 달리 몸젠의 '로마사'는 카이사르를 역사적 사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세계정신의 집행인으로 묘사했다. '로마사'의 파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험과학으로서 역사학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자기 시대의 역사가들과 다르게 몸젠은 역사와 문학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었다.

1902년 노벨상 선정위원회의 발표는 그 자체로 스캔들이 되었다. 세간의 예측과 달리 톨스토이가 아닌 역사가 몸젠이 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됐기 때문이다. 일부 문인은 격하게 반발했다. 바로 전 해인 1901년 제1회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프랑스의 시인 쉴리프뤼돔으로 결정된 직후 스웨덴 예술학술위원회에 소속된 42명의 회원이 톨스토이에게 공개 사과 서한을 발송한 터였기 때문에 파장이 더 컸다. 34명의 후보자 중에는 톨스토이 외에도 마크 트웨인, 에밀 졸라, 게르하르트 하웁트만, 헨리크 시엔키에비치, 윌리엄 예이츠 같은 거장들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위원회는 몸젠을 선택하면서 그의 '로마사'가 "역사서술의 예술적 경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탁월한 거작"이라고 밝혔다. 몸젠을 후보로 추천한 독일의 베를린학술원은 그가 "풍요로운 정신을 보유한 개인, 예술가적 경지의 문필가, 생동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조각가의 생생하고 예리한 특질을 매력적인 형식을 통해 보여주었다"고 강조했다. 바로 이 대목이 중요했다. 몸젠의 '로마사'는 내용의 완결성만이 아니라 특유의 형식미에서도 인정받은 것이다. 문학과 중첩되지만 동시에 문학과는 구별되어야 하는 역사 내러티브의 강점을 한껏 살렸다는 뜻이다.

몸젠은 문학 소년이었고, 자기 시대의 직업적 역사가들과 달리 문학적 수사의 활용에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문학과의 친연성이 노벨상 수상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역사의 문학화나 역사의 정치-도덕화만으로는 몸젠이 누렸던 인기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역사책을 찾는 사람들의 기대가 역사소설 독자들의 기대와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독자는 몸젠에게서 귀스타브 플로베르나 월터 스콧의 책을 읽을 때와는 다른 무엇을 느꼈다. 몸젠은 독자가 역사가에게 기대하는 것은 사실보다 사실효과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원문 인용과 각주를 통해 복잡한 사실관계를 빼곡하게 배치하는 데 힘쓰지 않았다. 그 대신 몇 개의 원칙을 서술 속에서 뚜렷하게 구현했다.


몸젠의 로마사서 묘사한 카이사르
역사적 사명을 위해 희생한 인물
로마 공화정의 위기·변화에 주목
역사·문학의 경계 넘나들며 서술



무엇보다 역사를 관통하는 법칙을 독자들에게 반복적으로 환기시켰다. 몸젠은 "올바른 역사연구란 높은 곳에 올라서서… 필연적인 것의 불변하는 법칙들을…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복잡한 사태를 원리적으로 명료하게 파악하려는 독자의 욕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이나 칸트의 도덕률을 연상케 하는 역사 진행의 법칙, 곧 변화의 정률을 제시했다.

둘째, 몸젠은 변화의 동인들을 다양한 시간의 언어들을 통해 재현했다. 500년의 로마 역사에서 그가 가장 주목한 것은 공화정의 위기였다. 급변과 위기는 폭풍 같은 자연현상의 비유로 재현했다. 변화의 시점과 계기는 탄생과 단초를 통해, 질적 변화는 전환점과 분수령 같은 단어를 통해 묘사했다. 변화의 범위와 수준, 속도와 방향을 판단할 때는 개혁과 혁명, 발전과 진보가 교차하면서 등장했다. 이처럼 시간과 연계된 언어들이 사회적 관계를 규정하는 용어들과 결합되어 역사의 교직(交織)을 표현했다. 저항, 대립, 갈등, 내전이 바로 그것이다. 다루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사건의 특수성이나 지역적 특성 또는 시간적 변화가 소거된 추상적 성격의 개념어 출현이 잦아졌다. 계급, 신분, 농업경제, 화폐경제, 장원경제 같은 표현이 그런 경우다.

셋째, 시간의 계기 표현과는 거리가 먼 언어들도 종종 활용했다. 매우 낮은 수준의 변화, 또는 변화의 부재를 환기시키는 표현들이 등장했다. '로마사' 제1권 후반부에서 몸젠은 로마의 민중이 "통치 세력의 개선 불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확신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몸젠은 공화정의 몰락 원인을 강하게 고발했다. '개선 불가능성'은 좀처럼 변하기 어려운 구조(structure)의 존재를 암시한다.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은 지중해 세계의 지리환경만이 아니었다. 가내경제 같은 경제적 생활양식, 사람들의 집단적 심성 역시 수백 년의 시간이 흘러도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젠은 잘 알고 있었다.

몸젠의 '로마사'에는 세 종류의 시간 내러티브가 존재한다. 지리와 심성을 다루는 거시적 내러티브에서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심층의 세계를 건축과 지질학의 용어로 묘사했다. 수세대 이상의 시간 범위를 취급하는 중간 수준의 내러티브에서는 변화의 원인과 양상, 영향을 재현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구체적 인물들의 의도와 행위를 다루는 미시적 내러티브의 차원에서는 이렇게 서술했다. "카이사르는 전위부대의 최선봉에 서서… 그 작은 개천(루비콘 강)을 건넜다. 그는 9년 동안 떠나 있던 조국 땅을 다시 밟는 것과 동시에 혁명의 길에 발을 디뎠다." "주사위가 던져졌다"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카이사르에 관한 몸젠의 서술은 사건사 기술로 끝나지 않는다. '로마사' 전체에서 사실상의 주인공인 카이사르는 미시-중간-거시 내러티브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서술의 핵심 장치다. 몸젠에게 카이사르는 한갓 로마의 숙원을 해결한 민족사적 위인이 아니었다. 그 어떤 탁월한 개인과 민족도 실현하지 못한 지중해 세계의 염원을 해결하고자 했던 세계사적 개인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몸젠은 카이사르에 대한 몸젠의 상찬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로스의 절반도 안 되는 5년 반 동안 로마의 왕으로서 변속장치를 가동했다. … 카이사르는 현재와 미래를 위해 세계의 운명을 정돈했다."

최호근 교수 (고려대 사학과)

공동기획: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최호근
최호근 교수 (고려대 사학과)

최호근은 고려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독일 근현대사와 역사이론을 전공했고, 독일 빌레펠트 대학교에서 막스 베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제노사이드와 홀로코스트에 관한 비교연구를 수행했고, 부담스러운 과거사 교육을 위해 힘썼다. 국내외의 역사적 장소들을 탐사하면서 기억문화와 기념문화에 관한 비교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는 서구와 동아시아 사이의 문화적 영향관계를 해명하기 위해 트랜스내셔널 접근을 시도하면서 한국 민족주의의 문화적 형성과정을 탐색하고 있다.

'사총' '독일연구' '서양사론' 등 여러 학술지의 편집을 담당했다. 주요 저서로 '막스 베버와 역사주의'(독문, 2000), '서양 현대사의 블랙박스 나치 대학살'(2006), '독일의 역사교육'(2009), '기념의 미래'(2019), '역사 문해력 수업'(2023)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독일 역사주의'(1992), '원치 않은 혁명 1848'(2006), '세계시민주의와 민족국가'(공역, 2007),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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