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시인 시집만 팔아요." 독립서점 '산아래 詩' 눈길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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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07 17:58  |  수정 2023-06-08 07:18  |  발행일 2023-06-08 제2면
대구 남구 앞산카페거리에 위치한 로컬 시집 서점
판매액의 60% 시인에게...수익 보다 사회적 기여
돈 벌기 위한 부대사업 사양, 커피나 굿즈 안 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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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문을 연 시집 전문 독립서점 산아래 詩. 대구경북 시인들이 보내온 1천여권의 시집이 책장에 가득하다. <산아래 詩 제공>

대구에 시집 전문 독립서점이 문을 열었다. 대구경북 시인들의 시집만 판매하는 '로컬 지향 서점'으로, 판로가 부족한 지역 작가들이 독자와 만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평일 오후 찾은 시집 전문 독립서점 '산아래 詩'(대구시 남구 현충로7길 6)는 소박하지만 책방다운 품격이 느껴졌다. 앞산카페거리에 위치한 서점에는 1천여권의 시집이 책장에 가득했다. 모두 대구경북 시인들의 시집이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저명한 시인부터 무명 작가들의 시집까지 다양하다. 가끔 서울서 활동하는 유명시인의 시집을 찾는 고객이 있지만 책방지기는 "여기서는 구할 수 없다"며 정중히 선을 긋는다.

시집의 배치도 매일 매일 바꾼다. 인기 있는 시집을 '명당 자리'에 진열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곳에서는 모든 시집이 평등하다. 매일 시집의 배치를 바꿔 무명 작가의 작품도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놓아 독자와 만나게 한다. 책방지기의 보이지 않는 배려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일흔 나이의 책방지기는 한사코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밝히는 것을 꺼려했다. 그는 "대구에 있는 대형서점을 가보면 우리 지역 시인들의 시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시인들이 어렵게 출간해도 팔 수 있는 유통망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판로를 찾지 못해 시집을 집에 쌓아두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지역 시인들이 독자와 만날 수 있는 접점 역할을 하기 위해 산아래 시(詩)를 열었다. 수익 보다는 사회적 기여를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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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시인들의 시집만 판매하는 독립서점 '산아래 詩'. 판로가 부족한 지역 작가들이 독자와 만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산아래 詩 제공


영업방식도 남다르다. 대부분의 소규모 독립서점들이 도매상에 미리 돈을 치르고 책을 받는 '현매 방식'으로 구입하지만, '산아래 詩'는 시집을 별도로 구매하지 않는다. 시인들이 직접 시집을 보내오면 판매하는 일종의 위탁형식으로 운영한다. 정식 오픈 전부터 입소문이 나면서 시인들이 보내온 시집이 수시로 들어오고 있다. 수익은 시인들에게 더 많이 돌아가도록 책정했다. 서점에 들어온 시집은 정가의 90% 가격에 판매하고, 그 중 60%를 시인에게 돌려준다.

돈을 벌기 위한 일체의 부대 사업도 하지 않는다. 소규모 독립서점들이 책만 판매해서는 운영이 어려워 커피를 팔거나 자체 '굿즈'를 제작해 수익을 창출하지만, '산아래 詩'에서는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 책방을 찾은 고객들이 오로지 시집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호진 대구시인협회 회장은 "한국 시단은 수도권 중심이다. 판매망도 마찬가지다. 대구가 시인의 도시로 불린 만큼 시인들이 많고 우수한 시집도 많이 나오지만, 독자들은 정작 몰라서 읽지 못한다"며 "시집 전문 독립서점이 들어선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 지역 시인들의 작품이 골고루 조명을 받을 수 있는 장이 마련돼 뜻깊게 생각한다"고 했다. 또 "앞으로 시인협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도울 예정이다. 이미 '대구시인협회 자매책방'으로 함께 하자는 제안도 해놓았다. 경영상의 어려움이 닥치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계속 운영될 수 있도록 발벗고 나서겠다"고 말했다.

 

시집을 보내고 싶은 시인은 010-3529-7227으로 문의하면 된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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