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다 내 탓이오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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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10  |  수정 2023-08-10 06:51  |  발행일 2023-08-10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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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선우기자〈정경부〉

"말만 하지 말고! 실효적이고 실천적 지원을 원합니다."

지난달 17일 대구상공회의소에서 마련한 '2023년 상반기 경제동향 보고회'에서 나온 말이다. 지역의 한 자동차부품업체 관계자는 "친환경차 지원사업에 대한 말은 무성한데 정작 기업에는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발언이었다.

이 말을 꺼내기 전, 그는 내연기관 부품만 생산한 탓에 위기를 맞았음을 고백했다. 그런데 후회는 갑자기 행정기관에 대한 원망으로 둔갑됐다.

지역 차부품사에서 중역을 맡고 있는 그의 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선뜻 납득이 되진 않았다. 대구시는 꽤 오래전부터 전기차 관련 지원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차부품사 대부분은 자동차산업의 변곡점에서 망설였다. 100년 넘게 자동차산업을 지배해 온 내연차가 전기차로 급작스럽게 바뀌진 않을 것이란 막연한 낙관 때문이다.

전기차를 선도한 테슬라가 2018년 3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을 때도,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연이어 내연차 생산 중단 선언을 했을 때도 지역 기업의 관심사는 전기차가 아니었다. 하지만 업계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글로벌 자동차산업에서 전기차 성장세는 가팔랐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전기차 보급 대수가 연간 30% 성장해 2030년 누적 1억4천500만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자연히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탄소중립 시대 개막과 전기차 시장 확대로 2차전지 산업이 미래 핵심산업으로 부각되면서 기업 판도도 확 바뀌었다. 산업 전환에 선제 대응한 기업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2차전지 열풍을 주도해온 에코프로는 최근 국내 산업계·주식시장의 화두로 떠올랐다. 2021년 지주사로 전환한 에코프로는 현재 11개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이다. 1998년 설립 때만 해도 유해 가스를 제거하는 기능성 흡착제를 만들던 작은 회사였다. 25년 만에 시장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비록 투기 광풍으로 이어지며 주가는 등락을 거듭하고 있지만 배터리 산업 전망은 여전히 밝다.

뒤늦은 호들갑은 소용없다. 지자체를 향한 원망도 부질없다. 위기 원인도 책임도 기업의 몫이다. 행정기관이 산업을 선도하고 기업이 뒤따라가는 게 아니라, 기업이 산업 변화에 선제 대응하고 행정기관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성취동기가 없는 이들은 문제의 원인을 남 탓으로 돌린다. 단점을 보완하고 역량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같은 우를 범하지 않고 더 좋은 결과를 낳을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미래차 산업을 주도하는 기업이 되는 첫발은 '기업가 정신'을 되새기며 도전하는 것이다.
손선우기자〈정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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