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새 물결, AI 크리에이터] "AI 가능성에 대한 믿음과 생성 경험 쌓는 게 가장 중요해"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동질감'이다. 의견과 행동에 호감을 느끼거나 동의하는 사람에게 친근감이 든다. 하지만 로봇이나 기계가 인간과 지나치게 가까워질 때 느껴지는 감정은 묘한 위화감이다. 이를 심리학에선 '불편한 골짜기(Uncanny Valley)' 이론이라 부른다. 기술이 인간의 작업을 대체할 수 있다는 막연한 위기감은 우리에게 불쾌감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한국 AI 크리에이터의 대표주자로 통하는 이영운(55) 감독은 두려움 대신 가능성을 봤다. 이 감독은 20여 년간 국산 애니메이션의 프리프로덕션 디자인을 담당하면서 게임·영상·콘셉트 디자인과 디렉팅 그리고 연출 작업을 해온 그래픽 장인이다. 현재 'H3ECO'라는 건축 CGI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가 AI의 쓰임새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AI 덕분에 디자이너로서 기획은 물론 창의적인 작업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머릿속 구상을 보여주는 구현 과정이 어려웠지만, 이제는 어떤 것을 구상하고 더 개성적인 작품을 만들 것인지가 더욱 중요해졌어요. AI의 장단점과 각 AI의 특성을 이해할수록 더 창의적이고 넓은 범위로 자신의 작업영역을 넓히고 탐험할 수 있습니다.""20년간 애니 등 디자인·연출 건축CGI회사 H3ECO 대표 30억 규모 프로젝트 조감도 이틀만 고퀄리티 완성해 수주 AI 특성·한계 정확히 파악 효과적 활용 방법 고민해야 AI가 안정화되면 쓰겠다? 미루면 큰 장벽으로 다가와"이 감독은 AI 도구가 얼마나 강력한 생산성 도구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를 소개했다. 30억원 규모의 건축 프로젝트를 위한 조감도를 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다른 회사는 시간 부족으로 포기했지만 자신은 AI의 도움을 받아 단 이틀 만에 고퀄리티 조감도를 완성해 설계 용역을 수주했다는 것. AI에게 설계를 맡기는 게 아니라 설계의 마중물 역할을 맡긴 것이다. 그는 성공 비결로 '누적된 생성 경험'을 꼽았다. 꾸준히 새로운 도구를 실험하고 활용하며, AI 기술의 잠재력을 탐구해 온 결과라는 것. 이에 덧붙여 그는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 기술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체득한 과정이었다고도 했다. "AI는 그 자체로 해결책이 아닙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쌓아온 작업 경험과 AI 도구의 효율성을 결합하면 불가능해 보였던 일도 가능합니다. 결국 기술을 활용하는 사람의 태도와 끈기가 중요하죠." 그렇다고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이 감독은 급박한 상황에서 AI의 성과를 경험한 후 이를 바라보는 인식이 크게 달라졌지만, AI 기술을 도입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고 회상했다. "사내에서 1년 이상 AI 관련 브리핑을 진행했지만, 초반 6개월은 대부분이 무심한 반응을 보였어요. 하지만 AI의 효능을 확인한 뒤로는 모두의 인식이 달라졌고, 이제 각자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AI를 필수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작업의 흐름과 워크플로가 정립되기 시작했지요."AI가 실제 창의적 작업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가라는 질문에는 AI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과 생성경험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예를 들어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사람은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영상 제작에 경험이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AI는 이러한 기술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도구임에 틀림없습니다. AI 관련 무수히 많은 툴이 계속 출시되면서 기술적 한계를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AI 이미지 생성 경험이 없다면, 마치 책을 대략 훑어보고 내용을 다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잠시 교육을 받아도 실무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죠. AI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실제로 생성 경험을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AI가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명확히 선을 그었다. AI의 창의성을 보완하는 것도 결국 인간의 몫이라고 했다. "AI는 창작의 보조 도구로 보는 게 맞습니다. 사람은 특별한 인풋(Input)이 없어도 스스로 영감을 생성하고 실행할 수 있지만, AI는 반드시 인풋이 필요합니다. 창작자로서 인간이 할 일은 AI의 특성과 한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죠. 기술이 발전해 구상과 구현 과정이 쉬워질수록 창작자의 독창성은 더 중요해집니다. 'AI가 안정화되면 쓰겠다'며 사용을 미루지 마세요. 소소하게나마 계속 사용하며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AI는 큰 장벽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손선우기자"올해 기술습득단계 넘어 AI창작 약진 눈에 띌 것"이영운 감독은 AI 도입 초기에 자신만의 생성 경험을 쌓으며 활용법을 익혔다. 그는 자신만의 경험에 그치지 않고, 다른 창작자들에게도 AI 기술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페이스북을 통해 'AI 크리에이터'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AI 도구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열린 도구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용법을 제대로 모르면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기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커뮤니티를 통해 워크숍과 실습 자료를 제공하고, 창작자들이 서로의 작업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커뮤니티는 창작 초보자와 현업 디자이너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 감독은 앞으로도 다양한 세미나와 강연을 통해 AI 도구를 활용한 창작을 더 널리 알릴 계획이다."AI는 앞으로 창작의 중요한 축이 될 것입니다.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싶습니다."이 감독은 AI 크리에이터의 대표 주자로서 2025년 AI 전망도 내놓았다. "올해는 기술 습득의 단계를 지나 완성도 있고 창의적인 콘텐츠가 본격적으로 폭발하는 분기점이 될 것입니다. 주저하던 학교나 기업은 AI가 기본 구성이 될 것이고 AI를 주력 툴로 사용하는 창작자들의 약진이 눈에 띌 것입니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이영운 감독은 AI를 통해 시간과 비용의 경계를 허무는 경험을 했다. 향후 목표는 AI로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것이다. 이 감독의 대표 작품. 그래픽 장인 이영운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