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그라이아이…태어날 때부터 늙어버린, 세 여자의 성장이야기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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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15  |  수정 2023-09-15 08:04  |  발행일 2023-09-15 제16면
'목포문학상' 장편소설상 새이름
'박화성소설상' 개칭후 첫 수상작

[신간] 그라이아이…태어날 때부터 늙어버린, 세 여자의 성장이야기
박화성소설상 수상작인 '그라이아이'는 아일랜드 이탄지에서 한국계 미라의 머리가 발굴되면서 시작된다. 폭력을 마주한 세 여자의 성장이야기다.
[신간] 그라이아이…태어날 때부터 늙어버린, 세 여자의 성장이야기
김혜빈 지음/문학과지성사/248쪽/1만6천원

7천만원 고료 박화성소설상 수상작이다. 박화성소설상은 한국 여성 작가 최초로 장편소설 '백화'를 집필한 박화성의 문학적 열정을 잇는 작품을 발굴하기 위해 제정한 문학상이다. '목포문학상 장편소설상'이라는 이름으로 2021년 시작되다 올해부터 명칭을 바꿨다. 특히 국내 최대 상금을 내걸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올해는 두 달간의 치열한 심사 결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와 동 대학원 서사창작과를 졸업한 김혜빈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20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부문에 당선된 신예작가이기도 하다. 심사 당시 참신한 주제 선정과 신인이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박진감 있는 전개로 마지막까지 심사위원의 마음을 붙들었다고 한다.

소설은 아일랜드 이탄지에서 한국계 미라의 머리가 발굴되면서 시작된다. 첫 시작부터 독특한 전개로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의 인상적인 도입부를 잊지 못한다"(소설가 이기호)는 평과 함께 각 부가 전개될수록 점차 선명하게 확장되는 주제의식에 힘을 입어 "폭력에서 돌봄에 이르는 주제를 문제적으로 부각시킨다"(문학평론가 복도훈)는 찬사를 받았다.

책의 제목 '그라이아이'는 그리스어 '그리아이아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하얀' '늙은 여자' '노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백발이었던 그리스로마신화 속 세 자매를 지칭하기도 하는데, 각각 눈과 치아가 하나뿐이어서 번갈아 가며 사용해야만 했던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늙어버린 소녀'라는 점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소설은 주나와 영 그리고 백희, 세 여자의 성장이야기다. 폭력을 마주한 그들이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 보여준다. 주인공인 여성 인물들은 자신이 무엇을 열망하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아무것도 모른 채 사회와 집단에 의해 끊임없이 규정된다. 결국 정체성과 욕망, 꿈, 미래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른다. 이는 우리의 선조이자 머리만 발견된 미라, '백희'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친구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는 '주나',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해온 '영' 그리고 손가락이 여섯 개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자신의 삶에서 도망쳐야만 했던 '백희'와 그 딸들까지, 그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소설의 제목이 왜 '그라이아이'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소설은 각 부마다 각각의 인물 스토리가 전개된다. 1부에는 아일랜드 이탄지에서 발굴된 미라 '백희'를 취재하는 방송작가 주나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2부는 아일랜드에서 백희를 연구하고 그의 몸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 유 박사를 돕는 영의 이야기다. 3부에서는 손가락이 여섯 개인 아이, 태어날 때부터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도망쳐야만 했던 백희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주나와 영 그리고 백희, 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돌봄'을 강요당하고 '폭력'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신 앞에 놓인 현실과 맞서기를 택한다. 사회 속에서 타자화됐던 한 인물이 반드시 다시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키고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사랑에 대해 말한다. 이러한 대목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소설의 가장 큰 힘이자 매력이다. 또 누군가에게로 향하는 손과 다리가 아닌 '머리'가 발굴되었던 점 역시, 이들의 정신이 대를 이어서까지 끊기지 않고 온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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