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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철하<작곡가> |
브레멘 기차역 앞 광장으로 나오자, 여행 가방을 끌기에는 약간 불편한 돌길이 나를 맞았다. 트램 타는 곳까지 덜커덩거리며 가다가 결국엔 번쩍 무거운 가방을 손에 들었다. 10여 년 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작품 발표를 마친 후 밤 기차를 타고 돌아온 그 날도 그랬다.
브레멘 역 앞 광장을 새로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광장이지만, 빠르고 효율적인 방식이 아니라, 마치 시간을 들여 수공예품을 만드는 장인처럼 돌바닥을 깔고 있었다. 적당히 매끈하게 잘 다듬어진 돌들을 나무망치로 하나하나 두드려서 길바닥을 만드는 모습이었다. '브레멘 동물악대'로 유명한 이 도시에서 유학 중이던 나는 독일의 이 불편한 돌길을 좋아했다.
스트라스부르에서 발표했던 작품 제목은 '글로켄블루메(Glockenblume)'로, 한국어로 직역하면 '종꽃'이다. 그 곡을 작곡하면서 매끈한 보도블록 길보다는 흙길이나 돌바닥 길 같은 곡을 만들고자 했다. 미끄러져 내리는 음정들, 반음과 반음의 틈새에 존재하는 음높이들, 약간 어그러진 옥타브들, 마디 줄과 마디 줄 사이에 존재하는 리듬들, 흐느끼듯 소음을 뱉어내는 플루트 소리… 한국의 종소리를 닮은 곡을 썼다.
오랜만에 브레멘 시내를 걸었다. 오후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서 밤길이라고 하기엔 좀 이른 것 같지만, 브레멘 시내 상가의 불빛들은 다 꺼지고, 교회와 시청 같은 오래된 건물들을 비추는 조명들만 은은한 시간이다. 25년 전 처음 독일에 왔을 때, 가게들이 초저녁에 문을 다 닫아버려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지 않는 독일 가게들을 불편하게 여겼다. 그러면서도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독일 사회를 부러워했다.
오늘은 무슨 축제가 있는 듯, 시청광장에 야시장이 섰다. 상가의 불빛이 꺼진 어두운 거리에 더욱 강하게 빛나는 불빛들이 채워졌다. 나무 수공품 가게, 액세서리 가게, 기념품 가게 등도 있었지만, 쌀쌀한 날씨에 잘 어울리는 별식을 파는 가게들과 맥주 가게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다. 어둡고 긴 독일의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의식이라도 치르듯, 사람들은 찬 공기를 느끼며 광장에 나와 있다.
돌바닥으로 된 시청광장을 가로질러 매끄럽게 깔린 레일 위로, 트램이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지나간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그 장면을 사진에 담았다. 기계와 사람의 공존, 매끈함과 울퉁불퉁함의 공존. 빨리 달릴 수 있지만, 사람들을 배려하며 천천히 지나가는 전철처럼 속도 조절할 줄 아는 사회를 바란다.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정성껏 울퉁불퉁한 길을 만들어내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박철하<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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