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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
올해 봄부터 가을까지 '도시공원 기록 활동' 프로젝트를 위해 집 근처에 있는 함지근린공원을 찾았다. '도시공원 기록 활동'은 2022년 소설가 정지돈·이하진과 사진가 장혜진, 기획자 최윤경이 대구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달성공원을 기록하면서 시작되었다. 올해는 문화적으로 기록을 이어가기 위해 대구에서 활동하는 다섯 명의 청년예술가가 좋아하거나 자주 가는 공원을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했다.
공원을 방문하면서 발견한 것은 '움직임'이었다. 공원 내 사물들은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언제나 그대로인 것 같지만 머무는 사람들과 그곳에 존재하는 새나 연못의 오리, 다양한 나무 등을 통해 늘 생동감 있었다. 가장 빠르게 계절의 변화를 드러내면서 그 자리 그대로 있는 자연물들과 공간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소란하고 버겁게 느껴지던 주변의 속도에서 한 걸음 떨어지자 비로소 나의 속도를 감지할 수 있었다. 어느새 공원 가는 시간을 기다리게 됐다. 집 근처에 있었기에 따로 시간을 내거나 큰 결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그곳에서 흐르고 멈추고 달리고 넘어지고 반복되는 움직임을 발견했다. 피고 풍기고 메우고 채우는 움직임과 얽히고 헤매고 되풀이하고 기억하는 움직임을 발견하면서 공원 내 사물과 동사를 연결해 다섯 편의 시를 짓고 공원에서 관찰한 것을 기록으로 남겨 일지를 만들었다.
참여한 다른 작가들 또한 각자의 공원에서 또렷한 걸음으로 헤맨 과정과 기록을 만화와 회화, 도예와 사진으로 작업했다. 공원에서 생기를 발견한 작가도 있고, 시선을 낮춰 허리를 숙이고 구부릴 때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을 포착한 작가도 있다. 아름다운 풍경과 경이로운 생태, 상생의 장면 위로 덧입혀지는 개발과 자본이라는 문제 앞에 복잡한 심경으로 작업을 이어 나간 작가도 있다.
도시공원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무척 유익한 공간이지만 도심에 있는 여러 생명에게도 소중한 공간이다. 귀를 기울이면 각기 다른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고양이가 슬그머니 나타나기도 한다. 차량이 진입하지 않기에 어린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으며 반려견과 산책을 하기에도 좋다. 아이부터 노인을 비롯한 누구나 편히 드나들며 이용할 수 있는 환대의 장소이다. 평소 대하는 사람들과 늘 보던 눈높이에서만 마주하는 사물뿐 아니라 다양한 존재가 있다는 걸 체감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세계는 확장된다.
공원을 찾고 기록한 창작물들은 김광석길에 있는 갤러리 토마에서 '또렷한 걸음으로, 헤매는'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통해 11월5일까지 소개되며 이후 책자로도 발간될 예정이다. 전시 중 작가가 진행하는 워크숍과 지역에서 생태 관련 문화활동을 하는 활동가 및 단체와 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되니 참여해보길 권한다.
자연에서 휴식을 누리고 싶지만 바쁜 일상으로 쉽지 않은 현대인들에게 공원이 있다는 것, 그 공원에서 각자의 속도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다섯 명의 예술가가 각각 공원을 기록하며 느슨한 연결감과 책임감을 느낀 것처럼 각자의 공원을 방문하는 우리의 모습도 비슷하고도 닮지 않을까 생각한다. 도시공원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을 또렷한 걸음으로 마음껏 헤매며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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