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공연장에서 축구를

  • 정재은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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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02  |  수정 2023-12-12 10:32  |  발행일 2023-11-02 제14면

정재은
정재은 (공연 칼럼니스트)

한국에선 축구 이야기, 특히 군대에서 한 축구 이야기가 기피 대상이지만 영국 런던 국립극장에서 선보인 축구 연극은 인기리에 공연되고 있다. '디어 잉글랜드(Dear England)'는 지난 6월10일부터 8월11일까지 영국 국립극장 올리비에 극장에서 연일 매진을 기록했고 10월부터는 웨스트엔드에 있는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 연극은 2016년부터 영국 축구 대표팀 감독을 맡은 개러스 사우스게이트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국은 현대 축구를 만들어 세계에 전파했지만 오랜 시간 월드컵을 비롯한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디어 잉글랜드'는 2016년부터 2022년을 배경으로 오랜 악순환을 끊고자 하는 영국 축구팀 감독의 부드러운 혁명과 변화를 그린다. 2021년, 우승에 대한 열망은 SNS에서 선수들을 거세게 비난하는 것으로 번졌고, 경기 전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한쪽 무릎을 꿇는 선수들을 향해 팬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작품 제목은 당시 감독이 팬들에게 보냈던 진심을 담은 편지에서 따온 것이다.

작품에는 실제 인물에게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와 작가가 상상한 캐릭터가 섞여 있다. 감독을 비롯해 해리 케인, 웨인 루니 등이 등장하는데 배우와 실제 인물이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비교해 보는 것도 큰 재미를 준다. 중간중간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 같은 총리들도 등장한다. 그들의 특징을 과장되게 드러내면서 풍자하고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린다. 객석에는 아이들도 있는데 중간 통로로 이동하는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실제 축구장 같은 분위기를 즐기기도 한다.

무엇보다 축구를 묘사하는 연극적 표현 방식이 재미있다. 축구 경기는 느린 동작, 정지 동작으로 표현한다. 배우들이 공 없이도 무대에서 훈련하고 경기하지만 마치 축구공이 보이는 것 같다. 스포츠 자체에는 이미 극적인 요소들이 있다. 그러나 압축된 그들의 이야기가 눈앞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영국인들은 그들이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는 스포츠를 그들이 또한 사랑하는 극장에 가져다 놓았다. 모두가 잘 아는 이야기로 함께 웃고 공감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1천 석이 넘는 객석을 빈틈없이 채운다. 축구 감독의 메시지를 모티브로 82년생 작가가 구성한 연극을 통해 사회와 국가를 함께 돌아본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명작도 좋지만, 동시대를 사는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품을 만나는 것은 이 시기를 사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좋은 작품은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정재은<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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