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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은<공연 칼럼니스트> |
지난 칼럼에서 다룬 축구 연극처럼 스포츠를 소재로 사회와 정치를 이야기하는 공연이 있는가 하면 화재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연극도 있다. 올해 7월20일부터 한 달여간 영국 국립극장 도르프만 극장에서는 화재 사건을 소재로 한 '그렌펠(Grenfell): 생존자들의 말'을 선보였다. '그렌펠 타워' 화재는 2017년 6월에 런던 서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공공 임대 아파트였던 그렌펠 타워에는 저소득층과 이민자 120가구가 살고 있었다. 사건 1년 전 외벽을 리모델링 할 때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저렴한 자재를 사용했는데, 4층에서 시작된 불은 그 외벽을 타고 50분 만에 번져 24층 건물을 전소시켰다.
국립극장 연극 이전에 2021년 '그렌펠: 가치 공학', 2023년 '그렌펠: 시스템 실패'라는 작품이 있었다. 이 연극을 만든 리처드 노튼-테일러와 니콜라스 켄트는 사건을 취재하고 관련자들을 인터뷰한 여러 작품을 만들어 왔다. 공연 소개에는 이 작품을 두 사람이 썼다는 표현 대신 '편집'했다고 표기해 사건과 관련된 말들을 그대로 옮긴 연극의 특성을 드러낸다. '청문회로부터의 장면들'이라는 부제가 달린 두 작품은 400일 넘게 이어졌던 그렌펠 사건 청문회를 연극으로 구성한 것이다. 두 편집자는 방대한 분량의 문서에서 발췌한 내용을 배치했다. 연극은 마치 청문회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사실적이었다.
국립극장 '그렌펠: 생존자들의 말'은 그렌펠에 살았고 사건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작가 질리언 슬로보는 한 인터뷰에서 이 연극은 화재 사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작가는 5년간 여러 사람을 인터뷰했고 그중 몇몇 인물과 말을 선택해 연극으로 만들었다. 국립극장은 생존자와 유족들을 세심하게 챙기고 관련 커뮤니티와도 협력해 작품을 다듬었다. 훈련된 배우들이 대본으로 구성된 대사를 말하고 등장인물을 연기할 수 있도록 연습했다. 공연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생각을 모았다. 연출가는 무대에 그것들이 잘 드러나도록 배치하고 조율했다. 그리고 극장에서 관객과 만남으로써 공연이 완성됐다.
무대에서 공 없이도 축구를 실감 나게 보여주듯, 위에 언급한 공연들은 직접적인 불 이미지나 소리, 화재에 대한 묘사 없이도 비극을 전달한다. 공연을 통해 관객들에게 사건을 상기시킴으로써 변화를 끌어내고,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 이것이 연극의 역할이다. 정재은<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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