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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희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
요사이 알록달록 가을의 단풍이 절경을 이루었다. 출근길 바닥에 가득 쌓인 노란 은행잎을 밟으며 올해가 이제 마무리되어 가는 느낌을 즐긴다.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색을 연출할 수 있을까. 참 따뜻하고 푸근한 것이 한 해가 가득한 기분이다. 이 생각, 저 생각 좋았던 순간들이 스친다.
울긋불긋 단풍나무 옆에 변함없이 초록빛으로 서 있는 나무가 익숙하다. 서로에게 배경이 되어 참 잘 어울린다. 단풍 사이 보이는 가을의 그린과 새로운 싹을 피우는 봄에 보는 그린은 색감이 조금 다르다. 봄에는 파릇파릇 생동감이 솟고 가을에는 그윽한 완숙미가 느껴진다.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수채물감으로 풍경화를 그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계속 덧칠하게 된다. 칠하면 칠할수록 수채화 본연의 투명도는 사라지고 종이에 묻어나는 색감은 점점 변화하여 채색된다. 재밌는 것이 한참을 칠하면 아무리 덧칠해도 색이 변하지 않고 오히려 종이가 쭈글쭈글해진다.
이렇게 완성될 즈음, 물감을 풀어놓은 팔레트에는 어떤 색을 섞어도 쉽게 색이 바뀌지 않는다. 이 색, 저 색 너무 많이 섞여져 순도가 낮은 다소 칙칙한 색이 되었다. 채도가 낮은 색이다. 가을의 초록은 시간이 지날수록 낮은 채도로 깊이감을 드러낸다. 우리의 자연은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아 인생의 성숙함을 색으로 보여준다.
봄의 그린은 만물이 움트는 시기에 막 돋아나 세상에 아직 섞이지 않은 순도가 높은 순수한 색에 가깝다. 초록보다는 연두 같은 맑은 색감을 가진다. 가을의 그린은 봄과 여름의 강렬한 햇볕과 비바람을 맞고 한자리에서 버텨 성장한, 여러 순간이 섞여 순도가 낮고 깊은 색감을 연출한다. 주변을 모두 담아낸 듯하다.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지금 어느 계절에 살고 있는가.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내 삶의 순간은 이제 가을로 접어들기 시작한 듯하다. 성숙한 초록의 내면을 맞이하고 싶다. 더 추워지기 전에, 한겨울이 되기 전에 내 마음에 드는 내가 되기를. 계절에 맞는, 가을에 맞는 풍성하고 따뜻한 단풍의 색과 깊이감 있는 초록이 함께하길 바란다.
지난 주말 방문한 아홉산 숲에서 수국을 마주했다. 잔잔한 꽃잎이 큰 봉에 모여있는 수국은 만개할 때도, 질 때도 똑같이 이쁘다. 시들어도 꽃잎이 떨어지지 않고 꽃잎의 색만 바뀌어 그 성숙함을 지킨다. 보기 좋다.
김소희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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