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장벽 없는 무대에 장애를 올리다

  • 정재은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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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23  |  수정 2023-12-12 11:16  |  발행일 2023-11-23 제16면

정재은
정재은 (공연 칼럼니스트)

앳소호플레이스(@sohoplace)는 2022년 영국 런던에 문을 연 극장이다. 극장은 웨스트 엔드에서 50년 만에 새롭게 지어진 곳이라고 소개한다. 이들은 포용성을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현재 공연 중인 'The Little Big Things'로 휠체어 친화적 극장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뮤지컬은 유망한 럭비 선수였던 헨리 프레이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공연 제목은 그가 쓴 책 제목이기도 하다. 차이가 있다면 극 중 헨리는 스스로 휠체어를 밀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헨리는 17세 때 휴가 중 다이빙 사고로 어깨 아래가 마비되었다. 작품은 헨리의 부모와 형제들을 중심으로 장애를 받아들이는 헨리와 그의 가족 이야기를 그린다.

경기장처럼 가운데 무대를 두고 네 면에 객석이 감싸고 있다. 무대 모서리 네 곳은 출입구와 이어지는데, 휠체어를 탄 배우들이 자유롭게 객석 사이를 지나 무대로 들고 난다. 바닥은 대형 모니터로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색이 번지기도 하고 바뀌며 분위기를 바꾼다. 무대 세트가 없는 대신 조명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공연장 전체를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인다. 이것은 헨리가 입에 스틱을 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화가로 재탄생한 작품 내용과도 닿아있다.

뮤지컬은 실화를 공연으로 만들면서 사고 전 헨리와 사고 이후 헨리를 따로 등장시킨다. 헨리는 과거의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며 현재를 받아들이는데, 그중에서도 두 헨리가 공중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휠체어가 장벽 없는 공간을 날아다니는 장면은 특별한 감동을 주었다.

두 명의 헨리와 부모 역할 배우들도 뛰어났지만, 휠체어를 탄 물리치료사 아그네스 역의 '에이미'는 안정적인 연기와 노래, 민첩한 움직임으로 단연 눈에 띄었다. 안무는 주로 손동작으로 이루어져 휠체어에 앉은 배우들도 함께 했다. 청각장애인 안무가가 참여해 수화를 응용한 움직임을 만들었다.

장애를 주제로 하며 장애인 예술가들도 참여하는 만큼 극장은 장애 관객들의 접근성도 배려하고 있다. 수화 통역, 음성설명, 자막이 있는 공연도 있다. 언급한 세 가지 형태는 다른 공연장에서도 볼 수 있다. 공연장들은 자폐 스펙트럼에 속하거나 민감한 이들을 위해 음향 및 효과를 조정하는 '편안한 공연(릴렉스드 시어터)'이나 '감각 적응 공연'을 비롯해 '치매 친화적 공연'도 시도하고 있다.

국내에도 장애가 있는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작품이 늘어나고 있다. 장애 예술인 표준 공연장이 개관해 누구나 오를 수 있는 무대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반갑다.

정재은<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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