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영국 무대로 옮겨진 일본 애니

  • 정재은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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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30  |  수정 2023-12-11 15:48  |  발행일 2023-11-30 제14면

정재은
정재은<공연 칼럼니스트>

2023 로런스 올리비에 상 8개 부문에 지명되어 6개 부문 수상, 왓츠 온 스테이지 상 9개 부문에 올라 5개 부문 수상. 영국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과 히사이시 조가 제작한 뮤지컬 '이웃집 토토로(My Neighbour Totoro)' 이야기이다. 지난해 10월8일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초연했던 이 뮤지컬은 올해 11월21일 같은 극장에서 다시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 첫날, 1천154석의 바비칸 극장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으로 가득 찼다.

공연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토토로의 압도적인 크기나 인형을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섬세한 움직임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영국 관객들의 반응이었다. 작품 내용이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여서인지 일부 배역들은 일본식 영어를 말했다. 심지어 간단한 인사말은 일본어를 그대로 쓰고 자막도 없이 일본어로 노래했다. 가장 놀랍고 궁금한 것은 '영국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에서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일 것이다.

첫 공연 중에는 한창 공연이 진행되다가 커튼이 무대 세트에 걸려 내려오지 않는 작은 사고가 있었다. 극의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중요한 장면을 앞두고 있었고, 같은 문제로 또다시 공연이 멈췄다. 실망스럽고 화가 날 만한 상황인데 관객들은 오히려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격려했고 공연이 다시 시작될 때 환호했다.

커튼이 걷히자, 거대한 털북숭이 토토로가 눈앞에 나타났다. 손을 뻗어 만져보고 싶을 만큼 풍성한 털을 가진 커다란 인형이 살아 움직였다. 네 살 '메이'가 토토로를 처음 만나 토토로 배 위에서 잠드는 장면부터 고양이 버스 등 뮤지컬 '이웃집 토토로'는 애니메이션의 주요 장면들을 기발한 연극적 표현을 이용해 무대로 옮겨놓았다.

토토로는 고개를 돌리고 눈동자를 움직여 아이들을 바라봤고 이빨을 드러내며 미소 지었다. 입을 크게 벌려 괴상한 소리를 내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약속된 스무 명이 넘는 인형을 조종자들이 무대에 애니메이션을 그려냈다.

공연 소요 시간은 2시간40분인데 전반적으로 속도가 느리고 토토로가 나오는 장면은 짧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토토로의 등장에 기뻐했고 아이디어가 빛나는 연극적 표현들에 탄성을 질렀다. 커다란 나무 위에 자리 잡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과 노래의 힘도 컸다.

우리 창작 뮤지컬들도 런던 웨스트엔드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길고 험한 여정이겠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1988년 만들어진 일본 애니메이션은 2022년 영국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져 세계의 관객과 만나고 있다.

정재은<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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