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장관의 셀카 서비스

  • 이창호
  • |
  • 입력 2023-12-04 07:03  |  수정 2023-12-04 07:03  |  발행일 2023-12-04 제23면

2023120301000038400001451
이창호 논설위원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 선수의 '팬 서비스'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전력 질주' 사건은 아직도 회자된다. 과거 LA 다저스 시절 때다. 기다리던 팬들을 외면한 채 눈썹이 휘날리게 달아나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다. 동료 투수 커쇼가 일일이 사인을 해주는 모습과 대비됐으니 팬들의 실망이 이만저만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로선 다소 억울한 구석이 있었다. 실내 훈련에 늦어 사인을 해줄 시간이 없었단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뭇매를 맞을 만했다. 그는 "상처받은 팬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했다. 이승엽 감독(두산 베어스)도 한동안 구설에 올랐다. 선수 시절 "사인을 많이 하다 보면 희소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해 된통 욕을 먹었다. 훗날 그는 "팬들과의 스킨십에 더 노력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사인 희소성' 발언은 오랫동안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 다녔다.

어디 프로 스포츠 선수들뿐이랴. 정치인도 오십보백보다. 선거 땐 유권자에게 감언(甘言)을 쏟아낸다. 되고 나면 180도 바뀐다. 안중에 유권자는 없다. 공천장을 쥐어줄 권력자만 있다. 유권자를 하늘처럼 받들겠다던 선거 때 다짐은 온데간데없다. 시쳇말로 '개나 줘버려라'는 식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과거 대구경북 국회의원의 '유권자 무시'는 정평이 났다. 막대기만 꽂아도 금배지를 달았으니 오죽했겠는가. 지지자는 물론 지역구 사무실 관계자의 전화도 잘 받지 않았다. 지역구에 잘 내려 오지도 않았고, 주변 지인에게 대충 관리를 맡길 정도로 무관심했다. 유권자 서비스가 '빵점'이었던 시절이다.

프로 스포츠 선수는 팬 고마운 줄을, 정치인은 유권자 귀한 줄을 알아야 한다.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팬에겐 응당 감사 표현을 해야 하고, 자신을 다급하게 찾는 유권자에겐 진심을 다해 사정 얘기를 들어줘야 한다. 시간과 돈을 들여 경기장을 찾은 팬을 향한, 자신을 믿고 뽑아준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도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오랜 세월 구단(선수)이 보여준 팬들에 대한 각별한 존경심과 성적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변함없이 응원해 준 팬심이 시너지 효과를 낸 결과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대구에서 보여준 이른바 '셀카(셀프카메라) 서비스'가 인구에 회자됐다. 한 장관은 "기다리는 시민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선 안 된다"며 예매한 기차표를 취소하고 시민들과 3시간이나 사진 촬영을 했다. 한 장관을 보니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가 오버랩된다. 그는 내한 때마다 과하다 싶을 만큼 팬 서비스에 열성이다. 팬들에겐 항상 "You completed me(여러분이 나를 완성했다)"고 감사 인사를 잊지 않는다.

한 장관의 '셀카 서비스'를 놓고 곱지 않은 시각이 있다. '무슨 연예인 팬 미팅이냐'는 비판이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공직자의 본분을 잊지 말라는 경고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볼 필요가 있을까. 국민 소중한 줄 모르고 오만해질 대로 오만해진 정치인을 무수히 목도하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한 장관이 보여주는 탈권위주의적 자세는 신선하고 따뜻하다. 자동차 문 열어주는 의전 없애고 우산도 직접 들고 다니는, 무례한 국회의원엔 거침없이 할 말 하고 국민에겐 없는 시간도 만들어 셀카 찍어주는 모습 말이다. 정치적 속내를 차치하고 그의 '국민 프렌들리 마인드'만큼은 인정해 주고 싶다.이창호 논설위원

기자 이미지

이창호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