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현존

  • 허석윤
  • |
  • 입력 2023-12-11 06:46  |  수정 2023-12-11 06:56  |  발행일 2023-12-11 제23면

남편이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라며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세상에서 소중한 세 가지 금이 황금, 소금, 지금이래. 그중에서도 지금이 가장 중요하고~' 아내가 곧바로 답했다. "내게 소중한 세 가지 금은 지금, 현금, 입금!" 남편이 다시 문자를 보냈다. "방금, 조금, 송금!" 유머지만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이 부부는 적어도 '지금'의 소중함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지금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다수는 지나간 과거와 오지 않는 미래에 사로잡혀 있다.

고금의 영적 스승들은 시간은 환상이라고 가르친다. 과거나 미래 시간은 실재하지 않으며 단지 사람의 머릿속 관념일 뿐이라는 것. 오해는 없어야겠다. 그들이 말하는 시간이란 실생활에 필요한 도구적 시간 개념이 아니다.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빠져드는 심리적 시간을 가리킨다. 받아들이기 쉽진 않지만 맞는 말이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생각으로 채워져 있다. 하루에도 수만 번 생각이 일어난다. 그런데 그 생각은 모두 과거 기억 아니면 미래 상상이다. 이처럼 생각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어느 것도 실체가 없다.

사람들이 가끔 생각과 시간 차원을 벗어날 때도 있다. 자동차가 갑자기 돌진해 오면 생각할 겨를이 없다. 대자연의 위대함에도 생각은 멎는다. 진정 살아 있는 '현존' 상태가 된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습관적으로 현재에서 도피해 다시 생각과 시간의 가상세계를 헤맨다. 그곳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 두려움의 환영이 지배한다. 현존의 삶은 늘 묻는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허석윤 논설위원

기자 이미지

허석윤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